미국 SEC, 기업 동의 없이 주식 토큰화 허용 조치 고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장 기업의 동의 없이도 해당 기업의 주식을 토큰화하여 거래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SEC는 이번 주 내에 '혁신 예외 조치(Innovation Exemption)'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조치의 핵심은 엔비디아나 테슬라와 같은 상장사의 공식적인 허가 없이 제3자가 해당 주식의 가격을 추종하는 가상 자산(토큰)을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3자 토큰은 1300억 달러 규모의 탈중앙화 금융(디파이·DeFi) 플랫폼에서 주로 거래될 것으로 보인다. SEC는 이와 함께 해당 토큰이 의결권이나 배당금과 같은 전통적인 주식의 혜택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상장 권리를 박탈하는 조건부 승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물 자산의 토큰화는 주식, 채권, 부동산 등을 디지털 자산으로 변환하여 24시간 거래와 즉각적인 결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로, 최근 가상 자산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주제이다. SEC가 이 같은 규제 완화를 서두르는 가운데, 미국 자본시장도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특히, 가상 자산 거래소 '불리시'는 42억 달러를 투자하여 주식 소유권 추적과 배당금 지급을 담당하는 명의개서 대리인 기업인 이퀴니티를 인수하며 토큰화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또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토큰화 주식 및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으며, 나스닥은 상장사가 토큰화된 주식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가질 수 있는 토큰 디자인을 연구 중이다. 이와 더불어 미 상원 은행위원회는 최근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가상 자산 산업에 대한 감독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SEC는 디지털 증권 규제 권한을 유지하는 '클래리티법(Clarity Act)'을 제정하여 제도적 기반을 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 조치가 전통 주식시장의 투자자 보호 장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제3자 토큰화 증권은 공시 주식의 흐름을 모방하는 '합성 상품'과 유사하기 때문에 고객 확인(KYC)이나 자금 세탁 방지(AML)와 같은 기존 주식시장의 핵심 규제가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해 들어 디파이 플랫폼들이 해킹 공격을 받아 큰 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늘어나면서 보안 취약성에 대한 우려를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다수 가상 자산 플랫폼에서 동일한 기초 자산을 기반으로 한 토큰이 무분별하게 거래된다면 주식 시장의 파편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브렛 레드펀 시큐리타이즈 사장겸 전 SEC 거래·시장국장은 "발행 기업의 참여 없이 제3자가 임의로 주식을 토큰화할 수 있다면, 동일한 회사에 대한 수많은 버전의 토큰이 동시에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는 투자자들이 자신의 주식 가치에 대한 확신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업계의 대표 단체들 또한 광범위한 예외 조치가 시장의 투명성을 해치고 무질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을 반박하고 있다. SEC 내부에서도 이 조치에 대한 이견이 표출되고 있으며, 해당 조치는 SEC 위원장 폴 앳킨스의 측근인 헤스터 피어스 위원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어스 위원은 최근 회의에서 이 조치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시장의 과도한 기대감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EC 대변인은 현재 규정 조율을 위해 수백 명의 시장 참여자들과 만나는 등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