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 우선매수권 미행사로 90만 배럴 원유 확보 실패
한국석유공사가 최근 9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내부 매뉴얼에 따른 판단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중순, 석유공사는 원유 비축을 위한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해당 물량이 외국으로 매각됐다. 이 사건은 석유 수급 불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보수적인 대응을 선택한 석유공사의 내부 방침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매일경제의 취재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자원안보 위기경보 시스템에 따라 단계별로 우선매수권 행사에 관한 매뉴얼을 운영하고 있다. 자원안보 위기경보는 ‘관심’, ‘주의’, ‘경계’, ‘심각’의 4단계로 구분되며, 비축 물량이 판매된 시점은 ‘관심’ 단계에 있었음이 확인됐다. 정부는 지난달 5일 중동 전쟁 발발에 따라 원유에 대한 첫 번째 ‘관심’ 단계를 발령했으며, 18일에는 ‘주의’, 이달 1일에는 ‘경계’로 단계가 상향 조정됐다.
한국석유공사는 ‘관심’ 단계에서 예상될 수 있는 조치를 검토한 결과,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으로 인한 원유 수급 불확실성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위기 단계가 낮아 선제적인 대응이 힘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석유공사는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PC)와 계약을 체결하고, 20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비축하기로 했으나, KPC는 원유 가격 상승으로 인해 베트남 정유사에 물량을 매각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한국석유공사는 KPC와 재협상을 거쳐 110만 배럴은 국내에 공급하고, 나머지 90만 배럴은 NSRP에 판매하기로 변경된 것이다. 결국, 비축기지에 도착한 원유 중 90만 배럴은 해외로 유출되었다.
업계 관계자는 "우선매수권 행사에 대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격 상승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내부 매뉴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하여 산업통상부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할 뜻을 내비쳤다.
이번 사건은 원유 비축과 관련된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우는 사례로, 자원안보 위기경보 단계별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앞으로 비슷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정교한 판단과 운영 매뉴얼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