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는 하드디스크 공정을 팔고 유리판 공급자로 남았다 [기업해부사전 18화]
하드디스크 안의 원판은 금속처럼 반짝이지만, 그 바탕이 유리일 수 있습니다. 안경렌즈로 익숙한 호야(일본 종목코드 7741)가 만드는 물건입니다. 눈앞의 빛을 다루던 회사가 컴퓨터 안에서는 데이터가 기록될 원판의 바닥을 만듭니다.
2026년 호야는 데이터센터용 HDD 유리 기판의 새 베트남 공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첫 단계 투자 계획은 약 500억 엔, 가동 목표는 FY28입니다. 하드디스크 부품에 큰돈을 다시 넣는 이 회사는 2010년에 하드디스크 관련 사업을 판 적이 있습니다. 팔고도 남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이번 공장의 정체가 보입니다.
데이터를 담는 막 아래에 호야의 유리가 있다
유리판 자체에 파일을 새기는 것은 아닙니다. HDD는 자성을 이용해 정보를 기록하는 원판을 돌립니다. 그 원판에는 기록을 맡는 층과 이를 받치는 바탕이 따로 있습니다. 호야의 주력 상품은 이 바탕, 유리 기판입니다. 창문 유리를 동그랗게 자르기만 하면 되는 물건은 아닙니다.
원재료를 원판으로 가공한 뒤 강도를 높이고 표면을 정밀하게 연마합니다. 원판 위에 자성막을 형성하면 기록 매체가 되고, 여기에 헤드와 모터 등 다른 부품을 결합하면 하드디스크가 됩니다. 호야는 HDD 제조사와 기록 매체 제조사에 기판을 팝니다. 데이터를 보관하는 이용자의 돈이 저장장치를 만드는 회사의 부품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이 순서에서 유리는 투명해서 선택되는 재료가 아닙니다. 호야의 유리 기판은 충격과 진동을 견디고, 얇게 만들어도 쉽게 휘지 않는 특성을 갖습니다. 같은 하드디스크 안에 원판을 더 넣으려면 두께를 줄여야 합니다. 얇아진 뒤에도 제 모양을 유지하는 성질이 저장 용량과 연결됩니다.
안경과 하드디스크가 같은 제조법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두 사업을 함께 이해할 단서는 재료를 원하는 성질로 만들고 표면을 정밀하게 가공하는 역량입니다. 호야는 1941년 광학유리 생산으로 출발했고, HDD용 유리 디스크는 1991년에 내놓았습니다. 컴퓨터에 들어간 유리는 최근 AI 유행에 맞춰 갑자기 찾아낸 상품이 아닙니다.
공장을 산 회사가 유리판 고객으로 남았다
2010년 거래에서는 원판의 바탕과 그 위의 막이 서로 다른 주인을 갖게 됩니다. 호야는 싱가포르의 자성막 형성 사업과 관련 자산을 웨스턴디지털(WDC)에 넘겼습니다. 유리 기판을 만드는 사업 전체를 판 것이 아니라, 기판 위에 기록용 막을 입히는 쪽을 떼어 판 거래였습니다. 매각은 그해 6월 30일 완료됐습니다.
매수자가 발표한 계약에는 별도의 약속이 들어 있었습니다. 호야가 해당 사업에 필요한 유리 기판을 여러 해 동안 공급한다는 내용입니다. 웨스턴디지털은 생산시설을 사면서 그 시설에서 사용할 기판의 조달도 묶었습니다. 호야에는 매각대금과 구별되는 거래가 남았습니다. 이후 공급하는 기판에 대해 고객에게 돈을 받는 일입니다.
시설을 인수한 쪽에는 자성막 생산설비와 운영이 넘어갔고, 호야에는 재료와 정밀가공을 중심으로 기판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판매한 공정과 유지한 공정을 나눠 보면, 사업 매각이 곧 고객과의 단절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거래의 경계가 공장 소유에서 부품 공급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당시 호야가 밝힌 선택의 이유도 기판 기술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기대하던 수요는 노트북과 디지털 가전이었습니다. 2010년 경영진이 훗날의 생성형 AI까지 내다봤다고 읽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 시점에 성장하던 시장을 상대로, 회사가 직접 맡을 공정의 범위를 정한 선택입니다.
노트북에서 줄어든 원판이 서버에서는 커졌다
그 뒤 노트북의 저장장치는 SSD로 이동했습니다. SSD에는 HDD처럼 회전하는 원판이 없습니다. 호야의 소비자용 2.5인치 기판에도 줄어드는 시장이 생겼습니다. 유리를 잘 만드는 기술이 있어도, 고객 제품에서 원판 자체가 빠지면 그 자리에 계속 납품할 수는 없습니다.
수요가 남아 커진 곳은 데이터를 대량으로 쌓아 두는 데이터센터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저장 용량당 비용이 중요합니다. 호야의 서버용 3.5인치 기판은 네트워크로 접근하는 대용량 저장용 HDD에 들어갑니다. 개인이 노트북을 바꾸는 수요와 클라우드 사업자가 저장공간을 늘리는 수요는 다른 속도로 움직입니다.
FY25에도 소비자용 2.5인치 기판 매출은 크게 줄었지만, 데이터센터용 3.5인치 기판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기판 사업 전체의 매출은 늘었습니다. 같은 회사의 같은 유리 기판 사업 안에서 작은 원판과 큰 원판의 방향이 갈린 것입니다.
처음의 베트남 공장도 이 변화 뒤에 놓여 있습니다. 공장 계획은 늘어날 3.5인치 기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입니다. 생산능력을 늘리는 비용은 호야가 먼저 부담하고, 실제 주문은 HDD와 기록 매체를 만드는 고객에게서 들어옵니다. 데이터가 늘어난다는 사실과 새 공장이 주문으로 채워지는 일 사이에는 고객의 제품 채택과 구매가 있습니다.
더 많이 쌓거나, 한 장에 더 많이 쓰거나
하드디스크의 용량을 늘리는 길은 하나가 아닙니다. 원판을 더 많이 넣을 수도 있고, 원판 한 장에 더 많은 데이터를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앞의 길에서는 얇고 잘 휘지 않는 기판이 중요해집니다. 뒤의 길에서는 기록 방식과 원판 재료가 함께 바뀝니다.
열보조 자기기록, HAMR은 아주 작은 기록 부위를 순간적으로 데워 데이터를 쓰는 기술입니다. 유리 전체를 뜨겁게 달구는 방식이 아닙니다. 시게이트(STX)의 기술 자료에 나오는 HAMR 원판은 특수 유리 바탕 위에 기록층과 열의 흐름을 조절하는 층을 쌓습니다. 바탕 재료는 기록층을 고온에서 형성하는 제조 공정도 감당해야 합니다.
이는 연구실에만 머문 이야기도 아닙니다. 2026년 3월 시게이트는 HAMR 기반 Mozaic 4+ 제품을 대형 클라우드 고객 2곳에 양산 출하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사례는 기록 기술의 상용화를 보여줍니다. 특정 시게이트 제품에 호야 기판이 들어간다는 주장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여기서 호야에 유리한 변화와 단순히 곱해서는 안 되는 숫자가 갈립니다. 유리 채택이 늘면 기판 공급자가 참여할 시장이 넓어집니다. 한 장에 기록하는 양이 늘면 같은 데이터를 보관하는 데 필요한 원판 수는 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데이터 용량의 증가율을 그대로 유리판 판매량의 증가율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호야의 기회는 데이터 증가뿐 아니라, 하드디스크 안에서 어떤 재료가 선택되는지에도 달려 있습니다.
호야가 남긴 것은 완제품보다 앞선 자리였다
공정을 팔면 보통 사업이 작아졌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호야의 거래를 원판 한 장의 단면으로 보면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기록을 맡는 막을 만드는 사업은 넘겼고, 그 막을 받치는 유리는 계속 공급했습니다. 더 많은 공정을 소유하는 길 대신, 고객의 다음 제품에도 필요한 기판을 만드는 일을 남겼습니다.
그 선택이 시장의 변화를 없애 주지는 않았습니다. 노트북의 회전 원판이 줄어든 뒤에도, 서버에서는 더 얇은 원판과 새로운 기록 방식에 맞는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호야가 새로 짓는 공장은 과거에 팔았던 공정을 그대로 되찾는 공장이 아닙니다. 유지했던 기판 사업을 다른 수요에 맞춰 키우는 공장입니다.
안경렌즈와 하드디스크를 나란히 놓는 것만으로도 낯선 회사가 됩니다. 그보다 오래 남는 이야기는 유리판 위의 어느 층까지 자기 일로 삼을지 정했던 선택입니다. 호야는 하드디스크를 완성하는 회사가 되지 않고도, 그 안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자료: 호야 연혁, 호야 핵심기술, 유리 기판 제품 설명, 2010년 매각 발표, 매각 완료, 웨스턴디지털의 인수·기판 공급계약 발표, 2024 통합보고서, 2026 통합보고서, HAMR 기술자료, 2026년 HAMR 양산 발표.
자료 확인일 2026년 9월 23일. FY25는 2026년 3월 종료 회계연도, FY28은 2029년 3월 종료 회계연도입니다. 신규 공장의 금액과 가동 시점은 계획입니다. 2010년 공급계약을 현재 계약 조건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기술 변화와 사업 선택을 연결한 해석은 특정 제품의 납품 관계나 향후 실적을 확정하지 않습니다. 특정 종목의 매매를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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