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제약은 캄보디아에서 박카스를 팔지 않는다 [기업해부사전 22화]
약국 계산대 옆 냉장고에서 꺼내는 갈색 병 박카스는 동아제약이 판다. 캄보디아 프놈펜 길가 노점의 얼음 상자에서 꺼내는 250mL 캔 박카스는 동아에스티(170900)가 판다. 이름도 같고 피로회복제라는 자리도 같은데, 돈을 받는 회사가 다르다.
이 이야기를 오늘 꺼내는 이유는 지주회사 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의 결정이다. 2026년 7월 23일, 이 회사는 주식 100%를 가진 자회사 동아제약을 흡수합병하고, 합병기일인 10월 1일부터 회사 이름을 동아제약으로 바꾼다고 밝혔다. 13년 동안 증권시장 종목 목록에서 빠져 있던 이름이 돌아온다. 보도는 대개 「동아제약의 상장 복귀」라는 데서 멈춘다.
박카스를 가르는 선은 회사 사이가 아니라 국경에 그어져 있다. 이번 합병은 국내 박카스가 버는 현금을 모회사가 직접 쥐게 하는 일이지, 박카스를 한 회사로 모으는 일이 아니다. 캄보디아의 캔은 10월 1일 뒤에도 동아에스티 장부에 남는다.
2013년, 박카스는 국경에서 갈라졌다
원래 동아제약은 하나였다. 1961년 알약으로 나온 박카스를 1963년 지금 같은 드링크로 바꿔 판 회사도, 병원에 전문의약품을 대던 회사도 같은 동아제약이었다. 2013년 이 회사가 셋으로 나뉘었다. 남은 몸통은 지주회사 동아쏘시오홀딩스가 됐다. 전문의약품·의료기기·진단 사업과 해외 사업은 떼어 내 새 상장사 동아에스티를 세웠다. 박카스와 일반의약품은 새 동아제약에 담겼다.
나누는 방식이 달랐다. 동아에스티는 기존 주주들이 새 회사 주식을 그대로 나눠 받는 인적분할로 태어나 2013년 4월 바로 상장했다. 동아제약은 지주회사가 새 회사 주식을 100% 갖는 물적분할로 태어났고, 상장하지 않았다. 국민 드링크를 파는 회사가 증권시장에서 사라졌고, 그 드링크의 해외 판매는 다른 상장사로 넘어갔다.
그 뒤 박카스의 매출은 두 회사에 따로 적혔다. 2024년 국내에서는 약국용 박카스D가 1,411억원, 편의점에서도 파는 박카스F가 1,270억원어치 팔렸다. 박카스F는 2011년 의약외품으로 바뀌어 약국 밖으로 나온 제품이다. 같은 해 동아에스티가 해외에 판 박카스는 836억원이다. 어느 한쪽 사업보고서만 펴서는 박카스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한 브랜드의 성적표가 회사 둘로 찢겨 있다.
프놈펜의 박카스는 유리병을 버렸다
동아에스티가 넘겨받은 해외 박카스 가운데 가장 크게 자란 곳이 캄보디아다. 2009년 현지 유통사 캄골드와 손잡고 들어갔다. 한국의 100mL 유리병은 그대로 가지 않았다. 현지 길거리 노점은 음료를 얼음 상자에 담아 판다. 박카스는 그 상자에 맞춰 250mL 알루미늄 캔으로 바뀌었다. 성분에는 인삼과 로열젤리가 더해졌다. 이름만은 크메르어로 옮기지 않고 「박카스」 그대로 뒀다.
자리 잡은 방식도 한국과 닮았다. 싼 음료로 레드불과 싸우지 않고, 월급 받는 사람의 고급 피로회복제로 팔았다. 캄보디아 매출은 2011년 52억원에서 2013년 277억원으로 뛰었다. 2017년에는 박카스 수출 653억원 가운데 626억원, 96%가 캄보디아 한 나라에서 나왔다. 한국에서 약국 병으로 큰 브랜드가 캄보디아에서는 노점의 캔 음료로 한 번 더 컸다.
이 캔이 동아에스티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회사 이름에서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동아에스티는 성장호르몬제와 위장약, 바이오시밀러를 파는 전문의약품 회사다. 2025년 매출 7,451억원 가운데 전문의약품이 5,278억원이다. 그런데 해외사업 매출로 좁히면 최근 5년 동안 40~60%를 캔 박카스가 책임졌다. 병원 약을 만드는 회사의 수출 절반 안팎이 드링크 한 품목에 걸려 있다.
국내 박카스의 돈은 13년 동안 배당으로 올라갔다
국경 안쪽의 동아제약은 조용히 현금을 벌었다. 2025년 매출 7,263억원, 영업이익 869억원을 냈고 영업으로 들어온 현금은 1,307억원이다. 그중 박카스 매출이 2,700억원이다. 상장하지 않은 100% 자회사였으니 이 돈이 주주 쪽으로 가는 길은 하나, 모회사에 올리는 배당뿐이었다.
모회사 장부를 보면 그 길이 선명하다. 2025년 동아쏘시오홀딩스 자체 매출 886억원 가운데 721억원, 81.1%가 자회사들이 올려 보낸 배당이다. 자회사가 번 돈을 모회사가 쓰려면 자회사가 배당을 정하고 올려 보내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10월 1일부터는 박카스를 파는 사업부와 돈을 나눠 쓰는 곳이 한 회사다. 이번 합병의 실체는 이 배당 파이프를 없애는 일이다.
회사가 밝힌 이유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 동아제약의 소비자 건강 사업 경쟁력과 안정적인 현금 창출 능력을 안으로 들이고, 의사결정을 줄이고, 순수지주회사라서 받던 할인 평가를 풀겠다는 것이다. 합병은 새 주식을 내지 않는 소규모합병이라 주주 구성은 그대로다. 증권시장에 새 종목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000640이라는 기존 종목이 박카스 사업을 직접 품은 회사로 바뀐다.
들어오는 것이 박카스 한 병만도 아니다. 동아제약 매출에서 박카스 비중은 2024년 39.0%였고 2025년 상반기에는 35.3%로 내려왔다. 그 자리를 여드름·색소침착 치료제 같은 일반의약품이 채웠다. 2025년 일반의약품 매출은 26.4% 늘어 2,239억원이 됐다. 박카스가 벌어 준 돈으로 키운 두 번째 기둥까지 함께 상장사 안으로 들어간다.
합쳐도 캔은 동아에스티에 남는다
이번 합병에 동아에스티는 들어 있지 않다. 동아에스티는 새 동아제약이 최대주주인 별도 상장사로 계속 남는다. 캄보디아 캔 박카스의 매출은 앞으로도 동아에스티 손익계산서에 잡힌다. 새 동아제약에는 국내 박카스의 매출이, 해외 박카스의 성과는 지분만큼의 몫으로 닿는다.
해외 쪽 사정은 국내만큼 조용하지 않다. 2026년 1분기 동아에스티 해외사업 매출은 337억원으로 1년 전보다 17.5% 줄었고, 캔 박카스가 약 20% 빠진 영향이 컸다. 동아에스티는 SK바이오팜에서 들여온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의 호주·뉴질랜드 판권을 현지 제약사에 넘기는 식으로 수출 품목을 넓히고 있다. 한 드링크에 기대 온 해외 매출을 약으로 분산하는 것이 동아에스티의 숙제가 됐다.
그래서 박카스를 사업으로 읽으려면 지금도 장부 두 권이 필요하다. 한 권은 약국과 편의점의 병을, 다른 한 권은 노점 얼음 상자의 캔을 적는다. 13년 전 분할은 회사를 셋으로 나누면서 박카스 브랜드에 국경을 그었고, 이번 합병은 그중 회사 사이의 선 하나만 지운다.
10월 1일부터 약국 냉장고의 갈색 병은 다시 증권시장에 이름을 올린 동아제약의 매출이 된다. 프놈펜 노점의 얼음 상자 속 캔은 여전히 동아에스티의 매출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바까」를 달라며 집어 드는 그 캔에는 한국에서 60년 넘게 쌓인 이름이 찍혀 있다. 그 이름을 13년 만에 되찾은 회사가 직접 적는 매출에는 그 캔이 한 개도 들어가지 않는다.
근거 자료: 동아쏘시오홀딩스의 동아제약 흡수합병·사명 변경, 합병 재무 현황과 배당수익 비중, 2013년 분할과 2026년 재결합, 합병 뒤 사업 구성, 2024년 박카스 매출(박카스D·F·수출), 동아제약 부문별 매출 구성, 동아쏘시오홀딩스·동아제약 2025년 실적, 캄보디아 캔박카스 현지화, 동아에스티 2025년 실적, 동아에스티 해외 매출과 세노바메이트 판권 이전, 박카스 출시와 박카스F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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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7일까지 확인한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사업 구조 해설입니다. 10월 1일 합병은 발표된 계획이며, 사업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해석입니다. 특정 종목의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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