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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에너지화학은 스티로폼이 아니라 부풀기 전 알갱이를 판다 [기업해부사전 27화]

서학개미기자 0 8 0
SH에너지화학 커버 — SH에너지화학,

택배로 온 생선 상자를 열면 하얀 스티로폼이 손에 닿는다. 부러뜨리면 단면에 작은 구슬이 촘촘히 붙어 있다. 그 구슬 하나하나가 처음에는 깨알만 한 단단한 알갱이였다. 증기를 쐬면 원래 부피의 50배까지 부풀고, 다 만들어진 스티로폼은 부피의 98%가 공기다.

아파트 벽 속에 들어가는 하얀 단열재 판도 같은 알갱이로 만든다. 그 알갱이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 온 회사가 전북 군산에 있다. 이름은 SH에너지화학(002360)이다.

10월 2일 이 회사가 시장경보 종목 명단에 올랐다. 처음 이름을 본 사람은 「에너지」라는 글자에서 가스나 발전 회사를 떠올린다. 2024년 회사 단독 매출을 열어 보면 97.62%가 군산 공장에서 나온 스티로폼 원료와 화장품 원료 가루다.

이 회사는 스티로폼을 만들지 않는다. 부풀기 전의 알갱이를 만들어 스티로폼 공장에 판다. 그래서 이 회사의 한 해는 자기 공장이 아니라 남의 공장과 남의 건물 벽에서 정해진다. 알갱이 회사가 사는 법을 알면 이 회사의 지난 20년이 한 줄로 꿰어진다.

스티로폼 공장보다 한 단계 앞에 선 공장

회사는 1958년 합성수지를 만들어 파는 신아화학공업으로 시작했다. 1985년에 발포폴리스티렌, 흔히 EPS라고 부르는 스티로폼 원료 사업에 들어갔고 같은 해 12월 증시에 올랐다. 이름은 신아, 신호유화, SH케미칼을 거쳐 2008년 3월 지금의 SH에너지화학이 됐다.

알갱이가 스티로폼이 되기까지는 공장이 둘이다. SH에너지화학이 폴리스티렌 알갱이 속에 부풀리는 가스(펜탄)를 품게 해 내보낸다. 이걸 받은 가공 공장이 증기로 알갱이를 부풀리고, 반나절쯤 숙성시킨 뒤 틀에 넣어 상자나 판으로 찍는다. 우리가 부르는 「스티로폼」도 원래 EPS를 만드는 회사가 붙인 상품명이었다.

SH에너지화학 — 알갱이에서 스티로폼까지, 공장은 둘 도판

이 순서가 돈의 길을 정한다. SH에너지화학의 손님은 생선 상자를 받는 사람도,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도 아니다. 전국의 스티로폼 가공 공장이다. 알갱이는 작고 단단해 실어 나르기 쉽지만, 부풀리고 나면 공기를 실어 나르는 꼴이 된다. 부풀리는 일은 쓰는 곳 가까이에서, 알갱이는 한 곳에서 크게. 원료 회사와 가공 공장이 나뉘어 있는 것도 이렇게 보면 자연스럽다.

흰 알갱이 12만 톤, 검은 알갱이 5만 톤

군산 공장은 5만6천㎡ 부지에 원료 저장 설비와 알갱이 공장 두 개를 두고 있다. 흰 알갱이를 한 해 12만 톤, 검은 알갱이를 5만 톤 만들 수 있다(2015년 기준). 국내에서 가장 큰 EPS 원료 설비다.

검은 알갱이는 흑연을 품은 알갱이다. 회사는 흑연을 겉에 바르지 않고 알갱이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자체 공법을 쓰고, 이렇게 만든 검은 단열재는 흰 것보다 단열 성능이 최대 20% 좋다고 설명한다. 생선 상자에는 이런 성능이 필요 없다. 검은 알갱이를 공장 하나 분량만큼 따로 만든다는 사실이 이 회사의 진짜 손님이 누구인지 말해 준다. 회사도 자기 주력을 건물 단열재용 EPS 레진이라고 적는다.

SH에너지화학 — 몸통은 벽 속에 있다 도판

브랜드도 그 순서로 늘었다. 흰 알갱이가 애니폴, 단열을 높인 것이 제로폴이다. 모두 벽 속에 들어갈 판을 위한 이름이다. 택배 상자는 우리가 매일 만지는 얼굴이고, 이 회사의 몸통은 아파트와 공장 벽 속에 있다.

불에 버티는 알갱이를 요구한 법

벽 속이 손님이면 벽을 다루는 법이 곧 시장의 규칙이 된다. 2020년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건축법 시행령 개정으로, 2021년부터 공장과 창고의 단열재는 불에 잘 버티는 등급 이상을 써야 하게 됐다. 2021년 12월 23일부터는 단열재 겉면만이 아니라 속 재료까지 준불연 성능을 따진다.

불에 약한 스티로폼 단열재는 이 규칙에 정면으로 걸렸다. SH에너지화학은 판의 속 재료, 곧 알갱이 단계에서 답을 내놓았다. EPS 레진에 불에 타지 않는 무기물을 특수 처리한 준불연 원료 듀오폴이다. 2019년 인터뷰 시점에 이미 상업 생산 중이었다.

규제가 다가오자 설비와 자금이 모자란 작은 가공 공장들은 대응에 애를 먹었다. 원료에서 성능을 해결해 주면 가공 공장이 떠안을 숙제가 줄어든다. 알갱이 회사가 손님의 숙제를 대신 풀어 주는 방식으로 자리를 지킨 장면이다.

1위인데 값을 쥐지 못하는 알갱이

SH에너지화학은 EPS 원료 시장에서 20년 넘게 1위였다. 그 1위의 크기는 2015년 기준 점유율 23%다. 나머지를 한국BASF, LG화학, 금호석유화학, 현대EP, 삼성SDI 같은 대형 화학사가 나눠 가졌다. 다섯 곳 넘는 원료사가 같은 알갱이를 같은 가공 공장에 판다.

흰 알갱이끼리는 차이를 내기 어렵고, 차이가 없으면 값이 손님을 가른다. 2019년 이규봉 당시 사장은 한 해 200억원을 웃돌던 영업이익이 2018년 20억원대로 줄었다고 말했다. 중국산 원료가 들어오고 국내 원료사끼리 값을 깎은 결과였다. 2018년에는 파업과 유가 상승도 겹쳤다.

그 뒤로 숫자는 더 얇아졌다. 연결 매출은 2022년 1,673억원에서 2025년 986억원으로 줄었고, 2025년 영업손실은 122억원이었다. 2026년 2분기는 매출 283억원, 영업이익 1억원이었다.

이 회사의 이익은 군산 공장의 실력보다 원료사끼리의 가격 다툼과 건설 경기가 먼저 정한다. 1위는 가장 많이 파는 자리였지 값을 정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검은 알갱이와 준불연 원료는 그 다툼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로 읽어야 한다.

이름의 에너지는 텍사스에, 가루는 파운데이션에

그럼 이름의 「에너지」는 어디서 왔을까. 회사는 2008년 3월 이름을 바꾸고, 그해 8월 미국에 100% 자회사 SH에너지USA를 세웠다. 750만 달러로 아칸소주 셰일가스 지대의 광권 약 3,000에이커를 사들였고, 시추한 가스정에서 하루 2,700Mcf(천 세제곱피트)쯤의 가스를 뽑았다.

지금 이 자회사는 텍사스 댈러스에 있고, 2022년 말 1,079.59에이커(지분 환산)의 광권 계약을 갱신했다. 회사가 적는 사업 순서는 지금도 합성수지, 자원개발, 경영컨설팅이다. 가스는 미국 자회사의 장부에 따로 산다. 군산 본사의 매출은 97.62%가 공장에서 나오고, 이름의 에너지는 그 장부에 들어오지 않는다. 2015년에도 EPS는 회사 매출의 97%였다.

SH에너지화학 — 이름은 에너지, 장부는 알갱이 도판

군산 공장의 97.62% 안에는 알갱이 말고 가루가 하나 더 있다. 나일론12를 공처럼 둥글게 만든 미세 가루, 애니베스다. 일본 스미토모화학 그룹의 기술을 들여와 만들었고, 파운데이션과 트윈케이크, 페이스파우더, 립스틱에 들어간다. 피부에 닿는 감촉을 부드럽게 하고 모공을 막지 않는다. 수입에만 기대던 원료를 국내에서 만든 경우다.

2015년 기준 이 가루를 만드는 설비는 한 해 80톤이었다. 12만 톤짜리 알갱이 공장 옆의 작은 설비다. 그런데 2026년 상반기 매출이 1년 전보다 14.2% 늘었을 때, 그 설명에 K-뷰티를 타고 늘어난 애니베스 판매가 들어 있었다. 이름은 미국 가스를 가리키고, 몸통은 벽 속 단열재이고, 요즘 새로 붙은 매출에는 화장대 위 가루가 끼어 있다.

이 회사를 읽는 순서는 이름과 정반대다. 에너지가 가장 작고, 화학이 가장 크다. 그 화학 안에서도 가장 큰 것은 남의 공장에서 50배로 부풀어서야 우리 눈에 보이는 알갱이다.

다음에 택배 상자의 스티로폼을 부러뜨리면, 단면의 구슬 하나하나가 군산에서 깨알만 할 때 출발했을지 모른다. 그 구슬이 상자가 될지 벽이 될지는 이 회사가 정하지 못한다. SH에너지화학은 자기 이름이 붙지 않는 물건의 맨 앞자리에서 41년을 버텼다.

근거 자료: 10월 2일 시세와 회사 개요, 군산 공장 생산 중단 대상 매출이 2024년 별도 매출의 97.62%, 1958년 설립·2008년 미국 천연가스 진출·사업 부문·2026년 상반기 실적과 애니베스 판매 증가, 군산 공장 부지·흰 알갱이 12만 톤·검은 알갱이 5만 톤·흑연 침투 공법·나일론12 80톤(2015년 르포), 점유율 23%·EPS 매출 97%·경쟁사(2015년), 영업이익 200억원대에서 20억원대로·중국산과 가격 경쟁·듀오폴 상업 생산(2019년 인터뷰), 2018년 파업과 유가 상승, 애니폴·제로폴·듀오폴과 2021년 12월 23일 심재 준불연 시행, 공장·창고 단열재 준불연 규제와 가공업체 대응, 듀오폴의 무기물 처리, EPS 부피의 98%가 공기, 스티로폼은 상품명, 펜탄을 품은 알갱이가 증기로 최대 50배 부푸는 공정, 2008년 SH에너지USA 설립과 아칸소 셰일가스 생산, SH Energy USA 광권 1,079.59에이커 갱신, 애니베스(나일론12 미세 가루)의 기술 도입과 화장품 용도, 연도별 매출과 영업손익, 2026년 2분기 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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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4일까지 확인한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사업 구조 해설입니다. 생산 능력과 점유율은 2015년 보도 기준이고, 97.62%는 회사 단독(별도) 매출 기준입니다. 구조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해석입니다. 특정 종목의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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