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나비엔은 보일러보다 온수기를, 한국보다 북미에서 더 판다 [기업해부사전 37화]
겨울 시골집을 배경으로 한 1991년 광고가 있다. 연탄불을 때는 노부부를 비추다가 며느리의 목소리 한 줄로 끝난다.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 드려야겠어요.」 광고를 낸 경동보일러는 몇 해 치 재고를 다 팔았다. 그 회사가 지금의 경동나비엔(009450)이다.
35년이 지나 이 회사 장부를 열면 첫 줄이 보일러가 아니다. 2023년부터 온수기 매출이 보일러를 앞질렀고, 2024년 상반기에는 온수기가 매출의 49%, 보일러가 41%였다.
돈이 나오는 곳도 바다 건너다. 2025년 매출 1조5,022억원 가운데 8,658억원, 57.6%가 북미에서 나왔다. 아버님 댁 보일러 회사의 가장 큰 손님은 한국이 아니라 북미의 집이다.
2026년 8월 11일 나온 2분기 실적에도 그 손님이 보인다. 매출은 3,882억원으로 1년 전보다 1.0% 줄었는데, 영업이익은 842억원으로 64.6% 늘었다. 회사는 작년 2분기 관세가 본격화되기 전에 판매가 몰렸던 탓에 올해 매출이 소폭 줄었고, 북미 성과와 관세 환급이 이익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한국 보일러 회사의 이익이 미국 관세표 한 줄에 출렁이기까지, 그 길에는 기술 하나가 있다. 이 회사가 수십 년 붙든 것은 보일러라는 물건이 아니라 연통으로 버리던 열을 한 번 더 붙잡는 기술이다. 한국에서 가스비를 아끼던 그 기술이 미국에서는 낡은 물탱크를 떼어 낼 이유가 됐다.
연통 앞에서 열을 한 번 더 붙잡는다
경동나비엔의 전신인 경동기계는 1978년에 세워져 이듬해 평택공장에서 기름보일러를 만들기 시작했다.
갈림길은 1988년이다. 그해 2월 네덜란드 보일러 회사 네피트와 콘덴싱 기술 제휴를 맺었고, 6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콘덴싱 가스보일러를 내놨다. 1991년 회사 이름을 경동보일러로 바꿨고, 같은 해 그 광고가 나갔다.
콘덴싱의 원리는 단순하다. 가스를 태우면 배기가스에 수증기가 섞여 나간다. 이 수증기는 식어서 물방울이 될 때 열을 내놓는데, 보통 보일러는 그 열을 연통 밖으로 그냥 버린다.
콘덴싱 제품은 열교환기를 하나 더 달아 그 열로 들어오는 찬물을 미리 데운다. 그래서 배기가스는 식은 채로 나가고, 기계 아래로는 응축된 물이 떨어진다. 버리던 열을 주워 쓰니 같은 가스로 물을 더 데운다. 이 회사의 콘덴싱 온수기는 쓴 에너지의 최대 96%를 물 데우는 데 쓴다.
1998년에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콘덴싱 열교환기를 세계에서 처음 선보였다. 보일러 회사의 실력은 불을 얼마나 세게 피우느냐보다 연통 앞에서 얼마나 덜 버리느냐에서 갈린다. 이 회사는 그 한 가지를 30년 넘게 붙들었고, 그 한 가지가 나중에 바다를 건너는 표가 된다.
미국 집은 난방과 온수를 따로 둔다
국내 보일러 시장은 지금 한 해 120만~130만 대에서 더 자라지 않고, 경동나비엔은 그중 35~37%를 가져간다. 집집마다 한 대씩 들어간 뒤로는 바꿔 다는 수요가 대부분인 시장이다.
이 회사의 미국 문은 그보다 훨씬 전에 열렸다. 2002년 1월 업계 처음으로 콘덴싱 가스보일러를 미국에 수출했고, 2006년 3월 미국 법인 나비엔 아메리카를 세웠다. 같은 해 회사 이름도 경동나비엔으로 바꿨다.
그런데 미국 집은 설비의 생김새부터 다르다. 한국 가스보일러는 한 대가 방바닥을 데우는 물과 씻는 물을 함께 데운다. 흔한 북미 집은 둘을 나눈다. 난방은 가스로 공기를 데워 덕트로 불어 넣는 퍼네스가 맡고, 온수는 따로 놓인 물탱크 온수기가 맡는다.
보일러로 난방하는 집도 있고 이 회사는 그 시장의 콘덴싱 보일러에서도 1위에 올랐지만, 한국식 보일러 한 대가 들어갈 자리는 처음부터 좁았다.
길이 열린 것은 2008년 11월이다. 경동나비엔은 물탱크 없이 쓸 때마다 물을 데우는 콘덴싱 순간식 온수기를 들고 미국에 들어갔다. 그때 북미 콘덴싱 온수기 시장은 한 해 2만 대 수준이었다. 2024년에는 80만 대가 됐고, 그 절반가량이 이 회사 제품이다.
2014년 북미 점유율 1위에 올랐고, 2017년부터는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보다 많다. 미국에 보일러를 팔러 간 회사가 보일러의 온수 쪽 반쪽을 떼어 내 팔면서 자리를 잡았다.
플라스틱 관 하나가 물탱크 자리를 열었다
미국 집에서 온수기를 바꾸는 일은 기계만 바꾸는 일이 아니다. 배기가스를 밖으로 뺄 관까지 손봐야 한다. 일반 가스 온수기는 배기가 뜨거워 금속 연통을 써야 한다.
콘덴싱 온수기는 배기가 식어서 나오니 PVC 같은 플라스틱 관으로 뺄 수 있다. 이 회사 제품은 지름 2인치 PVC 관으로 75피트, 약 23m까지 배기를 뺀다.
기존 배관을 이어 물탱크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달 수 있고, 차지하는 공간은 탱크의 5분의 1 정도다. 응축된 물이 산성이라 흘려보낼 배수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붙는다. 탱크를 떼어 낸 자리에 작은 상자 하나와 흰 플라스틱 관 두 줄이 남는다.
한국에서 콘덴싱은 가스비를 아끼는 기술이었다. 미국 집에서 이 기술이 먼저 풀어 준 것은 가스비보다 연통이었다.
배기가 식으니 값싼 플라스틱 관을 쓸 수 있고, 그래서 낡은 탱크를 떼어 낸 자리에 들이기가 쉬워진다. 가스비를 줄이는 원리와 설치를 쉽게 하는 원리가 같은 것이었다. 1988년부터 붙든 기술 하나가 미국에서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했다.
관세 한 줄이 평택 공장의 이익을 흔든다
북미 집에 달리는 이 온수기는 한국에서 만들어 바다를 건넌다. 평택 서탄의 공장은 한 해 200만 대를 만들 수 있고, 회사는 부지를 4만 평에서 10만 평으로 넓혀 연 439만 대까지 늘리는 계획을 세웠다.
생산은 평택에 있고 손님은 북미에 있다. 그 사이에 미국 세관이 선다.
2025년 2분기에는 관세가 본격화되기 전에 판매가 몰렸다. 그 분기 매출이 3,923억원으로 1년 전보다 27.5% 늘었고, 영업이익은 512억원이었다.
그해 8월 18일부터는 철강·알루미늄이 들어간 제품에 그 함량만큼 50% 관세가 붙었다. 금속 열교환기와 배관으로 채워진 기계를 파는 회사에는 비켜 갈 수 없는 줄이다.
1년 뒤 2분기는 거꾸로 움직였다. 앞당겨 팔린 물량이 빠진 자리에서 매출은 1.0% 줄었고, 영업이익은 842억원으로 늘었다. 그 안에는 돌려받은 관세가 들어 있다. 관세가 한 해는 매출을, 이듬해에는 이익을 키웠다.
미국 집에 달릴 온수기를 한국 공장에서 실어 보내는 회사라서, 미국 관세표의 한 줄이 이 회사 손익계산서의 한 줄처럼 움직인다.
남은 반쪽은 미국 집의 난방이다
경동나비엔은 2023년 11월 미국에 콘덴싱 하이드로 퍼네스를 처음 출하했다. 보일러처럼 가스로 물을 먼저 데우고, 그 물로 공기를 데워 덕트로 보낸다.
뜨거운 연소 가스로 공기를 바로 데우는 기존 퍼네스보다 실내가 덜 건조하고, 보일러부와 송풍부를 나눠 연소 가스가 실내 공기에 섞일 길을 막았다.
북미 퍼네스 시장은 한 해 470만 대로, 이 회사가 1위인 콘덴싱 온수기 시장의 5배가 넘는다(2023년 기준). 히트펌프를 하이드로 퍼네스와 묶은 냉난방 제품도 내놓고 있다.
2008년 보일러의 온수 반쪽으로 미국 집에 들어간 회사가, 이번에는 물로 데우는 난방이라는 나머지 반쪽을 미국식 덕트에 끼워 들고 간다.
1991년 광고 속 며느리는 연탄 때는 시골집에 보일러를 놓아 드리자고 했다. 35년 뒤 그 회사 매출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바다 건너, 물탱크가 서 있던 북미 집의 한구석이다. 보일러를 통째로 들이기 어려운 나라에서, 이 회사는 보일러를 반쪽씩 나눠 팔고 있다.
근거 자료: 경동나비엔 2026년 2분기 실적과 회사 설명, 2025년 매출과 북미 매출, 온수기·보일러 매출 역전, 2025년 연결 실적, 2024년 상반기 제품별 매출 비중, 1991년 경동보일러 광고, 경동기계 설립과 회사 연혁, 네피트 기술 제휴·미국 수출·미국 법인·온수기 진출 연혁, 스테인리스 콘덴싱 열교환기와 평택 공장, 콘덴싱 순간식 온수기의 작동 원리와 PVC 배기, 북미 콘덴싱 온수기 시장 규모와 점유율, 국내 보일러 시장 규모와 서탄 공장 증설, 해외 매출 비중과 북미 냉난방 사업, 2025년 2분기 실적과 미국 철강·알루미늄 관세, 콘덴싱 하이드로 퍼네스 첫 출하와 북미 퍼네스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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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일까지 확인한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사업 구조 해설입니다. 제품별 매출 비중은 2024년 상반기 기준이며, 구조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해석입니다. 특정 종목의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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