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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핀 '유럽으로 분산'… 수수료는 운용사로, 위험은 연금 가입자에게

동학개미기자 0 13 0
영국 운용사 헤이핀이 서울 간담회에서 유럽 사모대출 분산을 권고했다

연기금·보험사에 유럽 사모대출로 눈을 돌리라는 말은 독립 전문가의 조언이 아니라, 그 상품을 운용하는 영국 헤이핀이 서울사무소 개설 간담회에서 낸 메시지다. 국민연금은 이미 해외 사모대출펀드에 17조원 넘게 넣었고, 북미·유럽 대체투자의 손실이 공모 재간접펀드로 개인에게 넘어간 전례가 있다. 분산은 위험을 줄이는 말이지만, 이 구조에서 수수료는 운용사로, 남는 위험은 연금과 보험 가입자 쪽으로 흐른다.

뉴스 핵심

  • 유럽 사모대출 분산 권고는 서울사무소를 연 운용사 헤이핀의 간담회에서 나왔다.
  • 헤이핀은 한국 기관 자금 약 10억유로를 이미 운용하고 삼성생명이 주주로 있다.
  • 국민연금은 해외 사모대출펀드에 17조원 넘게, 보험사는 약 28조5000억원을 넣어 두었다.
  • 과거 북미·유럽 해외부동산펀드 손실 중 2조3000억원어치가 개인에게 재판매돼 있었다.

유럽 사모대출 권고는 누가 했나, 헤이핀의 서울 간담회

권고가 나온 자리는 연구소 세미나가 아니었다. 10월 1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 영국 사모대출 운용사 헤이핀캐피털매니지먼트(Hayfin)가 한국사무소 개설을 알리는 기자간담회였다.

마이크를 잡은 카를로스 플라 포트폴리오 운용 총괄은 "이들 입장에서 유럽 익스포저를 늘리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의미 있는 분산 투자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이들'은 미국 사모대출에 많이 투자한 한국 연기금과 보험사다.

말의 내용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같은 문장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가게 주인이 "우리 집 물건으로 바꿔 보시라"고 권하는 장면과 겹쳐 읽어야 한다.

10월 1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10월 1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헤이핀은 어떤 회사이고 한국에서 이미 얼마를 받았나

헤이핀은 2009년 런던에서 출발해 6월 말 기준 약 400억유로를 굴린다. 사모 크레디트, 쉽게 말해 은행 대신 펀드가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는 일이 본업이다.

한국과의 끈은 이미 굵다. 삼성생명(032830)이 무바달라와 함께 전략적 소수주주로 들어가 있고, 한국 기관에서 직·간접으로 받은 자금이 약 10억유로다.

운용사의 수입은 맡은 돈에 비례하는 수수료다. 한국 기관이 유럽 비중을 늘리는 일은 곧 헤이핀의 매출이 느는 일이다.

분산 권고와 영업 메시지가 한 문장 안에 겹쳐 있다.

국민연금은 3월 기준 해외 사모대출펀드에 이미 17조원 넘게 넣었다
국민연금은 3월 기준 해외 사모대출펀드에 이미 17조원 넘게 넣었다

국민연금 17조원 넘게, 이미 발을 담근 뒤의 권고

'눈을 돌리라'는 말은 처음 들어가라는 권유처럼 들린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은 3월 기준 해외 사모대출펀드에 이미 17조원 넘게 넣어 두었다.

보험사는 약 28조5000억원을 담았고, 3월 말에는 고위험 상품이라는 경고까지 붙었다. 보험·증권·연기금을 합친 해외 사모대출 투자는 약 38조원으로 집계됐다.

두 숫자는 집계 시점과 범위가 달라 서로 더하면 안 된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이번 권고는 신규 진입 제안이 아니라 이미 큰 비중 위에 지역 하나를 더 얹자는 제안이다.

가입자 돈은 기관에 모여 수수료를 내고 운용사 펀드에 출자된 뒤 유럽 기업 대출로 흘러간다
가입자 돈은 기관에 모여 수수료를 내고 운용사 펀드에 출자된 뒤 유럽 기업 대출로 흘러간다

유럽과 미국 사모대출은 무엇이 다른가

헤이핀의 논리에는 근거가 있다. 미국은 개인 자금과 반유동형 상품으로 들어오는 돈이 빠르게 불어나는 반면, 유럽 사모 크레디트는 기관 자금이 압도적이다.

업종도 갈린다. 미국 수요는 테크·소프트웨어에 몰렸고 유럽은 그 비중이 낮다. 헤이핀은 2년 전부터 테크 투자에 신중했고 헬스케어와 필수 서비스 대출을 늘린다고 했다.

플라 총괄은 유럽 시장이 "국가·법률체계별로 시장이 여전히 분절돼 있다"고 했다. 분절은 장점이자 짐이다. 충격이 한꺼번에 번지기 어렵지만, 나라마다 다른 법을 아는 운용사 없이는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도 된다.

그 '아는 운용사'가 바로 말한 쪽이다.

2024년 2월 북미·유럽 해외부동산펀드에서 기한이익상실 2조4600억원이 났다
2024년 2월 북미·유럽 해외부동산펀드에서 기한이익상실 2조4600억원이 났다

북미·유럽 해외부동산펀드 2조4600억원, 위험은 어디로 갔나

분산이라는 말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이미 있다. 2024년 2월 국내 금융사 해외부동산 펀드에서 기한이익상실이 2조4600억원 났다. 돈을 빌린 쪽이 약속을 못 지켜 대출금을 당장 갚으라는 사태다.

당시 금융권 해외부동산 투자의 80%가 북미·유럽에 몰려 있었다. 부동산가격지수는 미국이 149.9에서 121.1로, 유럽이 125.3에서 98.3으로 떨어졌다. 평가손실률은 5.9%, 약 3조3000억원이었다.

더 아픈 대목은 그다음이다. 공모펀드 21개, 2조3000억원어치가 재간접 형태로 개인투자자에게 팔려 있었다.

기관이 고른 해외 대체투자의 위험이 창구를 거쳐 개인 계좌로 내려온 경로가 한 번 열렸었다. 이번 유럽 사모대출이 같은 길로 가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경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사모대출에 직접 투자하지 않은 사람의 돈은 어디에 닿나

사모대출펀드는 개인이 증권사 앱에서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의 일도 아니다. 국민연금 가입자와 보험 계약자의 돈이 바로 그 17조원과 28조5000억원의 재료다.

돈의 경로를 따라가면 이렇다. 연금과 보험료가 기관으로 모이고, 기관은 수수료를 내고 운용사 펀드에 출자하고, 펀드는 유럽 기업에 대출을 내준다. 이자가 제대로 돌아오면 모두 웃는다.

헤이핀이 선박·해운에서 업계 최대 투자 플랫폼을 갖고 있고, 세계 최대 수준의 조선 역량을 가진 한국을 핵심 시장으로 꼽은 이유도 여기서 읽힌다. 자금과 대출처를 동시에 찾으러 온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결론은 이렇다. 유럽 분산은 그 자체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판단은 판매사가 아니라 돈 주인이 자기 숫자로 내려야 하고, 개인이 볼 지점은 이 위험이 언젠가 재간접펀드 이름을 달고 내 계좌 앞에 다시 나타나는지다.

동학개미 기자 · 생활 밀착형 시장 기자서학개미 캐릭터 기자 · AI 보조 및 편집진 검토 투자 유의사항

이 글은 특정 펀드·보험·연금 상품의 가입이나 해지를 권하지 않습니다. 사모대출은 만기가 길고 중도 환매가 어려우며, 유로화 등 외화 자산은 환율 변동과 차주 부실에 따라 손실이 날 수 있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 책임은 독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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