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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맥스, 셋톱박스로 매출 1조를 넘긴 회사가 이제 주차장 29만 면을 굴린다

서학개미기자 0 9 0

휴맥스, 셋톱박스로 매출 1조를 넘긴 회사가 이제 주차장 29만 면을 굴린다

휴맥스 커버 — TV 밑에서 주차장으로

TV 아래에 검은 상자가 하나 놓여 있던 시절이 있었다. 방송 신호를 받아 화면으로 넘겨 주는 셋톱박스다. 휴맥스(115160)는 이 상자 한 품목으로 2010년 매출 1조원을 넘겼고, 그 돈의 98%를 나라 밖에서 벌었다.

지금 휴맥스 그룹이 자기 사업을 소개할 때 앞에 세우는 것은 상자가 아니다. 계열사 하이파킹이 전국 1,400여 곳에서 운영하는 주차면 약 29만 개다. 하이파킹의 지난해 매출은 약 2,000억원이었다.

10월 1일 휴맥스는 지주회사 휴맥스홀딩스(028080)를 흡수합병했다. 같은 날 휴맥스의 최대주주 자리에서 휴맥스홀딩스의 이름이 빠지고 창업자 변대규의 이름이 올라갔다.

휴맥스는 처음부터 남의 서비스가 지나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는 회사였다. 방송은 셋톱박스를 거쳐야 TV에 닿았고, 자동차는 주차장에서 떠나 주차장에서 선다. 이 회사가 37년 동안 한 일은 업종을 갈아탄 것이 아니라 길목의 자리를 TV 밑에서 도로 끝으로 옮긴 것이다. 그 사이 바뀐 것은 돈이 들어오는 방식이다. 상자는 한 번 팔면 거래가 끝났고, 주차면은 차가 설 때마다 돈을 받는다.

TV 밑 상자 하나로 1조를 넘겼다

휴맥스 — 상자를 팔아 남긴 1조원 도판

1989년 서울대 제어계측과 대학원에서 같은 연구실을 쓰던 7명이 회사를 차렸다. 이름은 건인시스템이었다. 하숙생이던 변대규가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빌린 5,000만원이 자본금이었고, 첫해 매출은 1억2,500만원이었다.

회사는 디지털 셋톱박스 한 품목에 매달렸다. 고비는 일찍 왔다. 1996년 9월 수출 1,000만달러를 넘긴 직후 큰 고객사가 유럽 대형사에 인수됐고, 이탈리아와 남아프리카로 보낸 제품에서 품질 문제가 터졌다. 1997년 상반기에는 수출을 멈추고 품질만 붙잡았다. 하반기에는 외환위기로 거래처가 부도를 냈고, 회사도 부도 직전까지 갔다.

살아남은 회사가 간 길은 바깥이었다. 휴맥스는 자기 상표를 달고 해외 시장에 들어갔다. 해외 법인과 지사 15곳을 세우고 폴란드 등 7개국에 생산거점을 두어 80여 개국에 상자를 보냈다. 셋톱박스 분야 세계 4위까지 올라갔다. 2001년 매출 1,000억원을 넘겼고, 창업 21년째인 2010년에 매출 1조원을 넘겼다. 1970년 이후 생긴 회사 가운데 순수 제조업체로는 처음이었다.

이 1조원은 구조가 단순했다. 상자를 만들어 팔면 그 자리에서 매출이 됐다. 국내 몫은 2%가 안 됐다. 한국 회사이면서 한국 손님이 거의 없는 회사였고, 그 손님들이 계속 상자를 사 주는 동안에는 그게 강점이었다.

상자가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

휴맥스 — 방송이 상자를 돌아간다 도판

정점은 2017년이었다. 휴맥스의 별도 매출이 1조2,663억원이었다. 이듬해 9,670억원, 2019년에는 7,704억원으로 내려왔다. 2018년에는 39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가장 큰 시장인 미주의 2019년 1분기 매출은 1년 전 2,885억원에서 1,372억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셋톱박스를 찾는 수요 자체가 줄고 있었다.

길목에 선 회사의 약점이 여기 있다. 길이 다른 데로 나면 길목의 상자는 할 일이 없어진다. 방송이 상자를 거치지 않고 TV에 닿는 길이 늘수록, 1조원을 만든 그 상자는 손님의 집에서 하나씩 빠져나갔다.

휴맥스는 지금도 셋톱박스와 인터넷 공유기 같은 게이트웨이를 만든다. 2025년 매출은 3,900억원대로 내려왔다. 2017년의 3분의 1이 안 되고, 영업손실은 300억원에 조금 못 미쳤다.

상자 대신 주차장 29만 면

휴맥스 — 빈자리에도 비용은 든다 도판

상자가 줄어들기 시작한 바로 그 무렵 휴맥스는 새 길목을 샀다. 2019년 8월 30일, 국내 주차장 운영 1위 하이파킹을 1,700억원에 사들인다고 발표했다. 휴맥스와 사모펀드 운용사 스틱인베스트먼트가 렌터카 중개 회사 플랫에 1,950억원을 증자로 넣고, 플랫이 하이파킹 지분 100%를 사는 구조였다. 플랫은 휴맥스모빌리티로 이름을 바꿨다. 휴맥스가 이 거래에 넣은 돈은 700억원이다.

1999년에 생긴 하이파킹은 쇼핑몰과 호텔, 오피스, 공항의 주차장을 운영해 왔고, 인수 당시 주차장의 80% 이상이 서울·경기·인천에 있었다. 매출 98%를 나라 밖에서 벌던 회사가 산 것은 수도권 땅 위의 자리였다.

당시 휴맥스 대표 김태훈은 「주차장은 향후 모빌리티 서비스의 시작이자 종착지」라고 했다. 그 말대로 자리는 계속 늘었다. 2021년 1월 AJ파크를 664억원에 더했고, 카셰어링 피플카도 사들였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하이파킹·AJ파크·피플카를 포함한 인수 4건에 3,500억원이 들어갔다. 전기차 충전 회사 휴맥스이브이는 충전기 2만 기 이상을 운영하고, 제주에서는 시장의 약 26%를 쥐고 있다.

지금 하이파킹은 전국 1,400여 곳에서 약 29만 면을 굴린다. 지난해 매출 약 2,000억원을 주차면 수로 나누면 한 면이 1년에 약 69만원의 매출을 만든다. 손님도 바뀌었다. 바다 건너에서 상자를 사 가던 손님 대신, 수도권에서 차를 대는 운전자 한 명 한 명이 돈을 낸다.

자리는 늘었고 이익은 늦게 왔다

주차장 사업은 건물주에게서 주차장을 빌려 운영하거나, 직접 가진 주차장에서 돈을 번다. 빌린 자리라면 차가 덜 와도 값은 치러야 한다. 상자는 안 팔리면 덜 만들면 됐지만, 주차면은 비어 있어도 비용이 든다. 길목을 옮기면서 이 회사는 위험의 모양도 바꿨다.

숫자가 그 무게를 보여 준다. 휴맥스모빌리티의 연결 매출은 2019년 약 121억원에서 2021년 약 1,157억원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영업손실도 약 56억원에서 약 262억원으로 커졌다. 설립 뒤 6년 동안 쌓인 손실은 2,000억원에 이르렀고 부채비율은 300%에 달했다. 그룹 꼭대기의 휴맥스홀딩스는 2022년 506억원, 2023년 803억원, 2024년 62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돌아선 신호는 올해 나왔다. 휴맥스모빌리티는 2026년 1분기 연결 매출 634억원에 영업이익 흑자를 냈다. 한 분기의 숫자이지만, 3,500억원을 들여 자리를 사 모으던 회사가 그 자리에서 이익을 남긴 분기다.

17년 전 같은 날 나눈 회사

휴맥스 — 한 종목에 담긴 상자와 주차장 도판

2009년 휴맥스는 둘로 나뉘었다. 7월 7일 이사회와 8월 27일 주주총회를 거쳐 분할기일은 2009년 10월 1일이었다. 원래 회사는 휴맥스홀딩스로 이름을 바꿔 지주회사가 됐고, 셋톱박스 사업을 들고 나온 새 회사 휴맥스가 11월 16일 코스닥에 다시 올라왔다.

올해 일정은 그 반대 방향으로 겹친다. 6월 30일 이사회, 8월 28일 주주총회, 그리고 합병기일은 2026년 10월 1일이다. 휴맥스홀딩스 주식 1주는 휴맥스 주식 0.9646707주로 바뀌고, 새 주식은 10월 19일 상장된다. 합병에 반대한 주주는 8월 28일부터 9월 17일까지 회사에 주식을 사 달라고 청구할 수 있었다.

회사가 내건 이유는 두 상장사로 나뉜 구조를 하나로 합쳐 지배구조를 단순하게 하고, 강화된 상장 유지 요건에 대응하는 것이다. 코스닥은 올해 7월부터 시가총액이 200억원에 못 미치는 날이 30거래일 이어지면 관리종목으로 지정한다.

최대주주 칸도 바뀌었다. 합병 전에는 휴맥스홀딩스와 특수관계인 6명이 휴맥스 주식 154만9,100주, 35.96%를 가졌다. 합병 뒤에는 변대규와 특수관계인 7명이 99만9,058주, 15.17%를 갖는다. 변대규 개인 몫은 합병신주 86만5,706주, 13.15%다. 주식 수가 작아 보이는 것은 4월에 주식 10주를 1주로 합쳤기 때문이다. 변대규는 1989년 1월부터 2026년 9월까지 휴맥스홀딩스 대표였다.

상장사가 둘이던 17년 동안 셋톱박스 회사의 성적과 그룹 전체의 성적은 서로 다른 종목에 따로 찍혔다. 이제 그 칸막이가 없다. 휴맥스라는 한 종목이 줄어든 상자와 늘어난 주차장을 함께 진다.

1989년 하숙생이 5,000만원을 빌려 차린 회사는 상자를 80여 개국에 실어 보내 1조원을 만들었다. 같은 사람의 이름이 다시 맨 위에 올라간 회사에서 가장 큰 장사는 수도권에 차가 서는 일이다. 휴맥스가 다음에 내놓아야 할 숫자는 상자를 몇 개 팔았느냐가 아니다. 29만 개의 빈칸이 1년 동안 무엇을 남겼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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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휴맥스 최대주주 변경(2026.10.01), 최대주주변경 공시 요약(2026.10.01), 휴맥스·휴맥스홀딩스 합병 보도자료(2026.07.02), 합병 목적·모빌리티 현황(2026.07.02), 합병 일정, 합병 IR 분석, 변대규 창업·위기 이력, 매출 1조원 돌파 사설(2011.01.27), 별도 매출 추이·인수 이력(2021.02.24), 2018년 적자·미주 매출(2019.07.08), 2025년 실적(2026.02.11), 하이파킹 인수 보도자료(2019.08.30), 주차장 사업 구조·AJ파크, 휴맥스모빌리티 매출·손실·AJ파크 인수가, 휴맥스홀딩스·휴맥스모빌리티 손실(2026.02.03), 2009년 인적분할 일정(사업보고서), 주식병합, 코스닥 시가총액 200억원 기준. 공시 계기: 2026.10.01 최대주주변경(흡수합병).

작성 기준일 2026년 10월 2일. 주차면 한 개당 매출(약 69만원)은 하이파킹의 지난해 매출 약 2,000억원을 주차면 약 29만 개로 나눈 계산입니다. 사업 구조에 관한 필자의 해석을 포함합니다.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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