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온그룹 상한가… 위즈위드 닫고 반도체 공장 배관으로 번다
엑시온그룹(069920)이 2026년 10월 2일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이날 거래량은 130만6705주로, 직전 20거래일 평균 약 24만7000주의 5배를 넘었습니다.
이 종목코드가 낯익다면 아마 위즈위드 때문일 겁니다. 해외 브랜드 옷과 신발을 대신 사다 주던 그 쇼핑몰입니다. 그 위즈위드는 2026년 4월 30일 서비스를 완전히 끝냈습니다.
지금 이 번호 아래에서 돈을 버는 것은 반도체 공장 천장과 바닥을 지나는 배관, 그리고 공장 라인에 들어서는 산업용 로봇입니다. 쇼핑몰에서 배관까지 오는 동안 그대로 남은 것은 069920이라는 번호 하나였습니다.
이 회사의 지난 몇 년은 사업이 자란 역사가 아닙니다. 상장된 번호 하나에 사업을 떼었다 붙인 역사입니다. 지금의 배관 회사는 그 번호가 가진 다섯 번째 얼굴입니다.
투자 참고용 정리입니다. 작성 기준일 2026년 10월 2일.
069920의 첫 얼굴은 SK에서 떨어져 나온 쇼핑몰이었습니다
시작은 2000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사내 사업부였습니다. 2001년 3월 '위즈위드코리아'로 분사했고, 국내 1세대 해외구매대행 업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2009년 3월에는 상호를 '아이에스이커머스'로 바꿨습니다. 위즈위드는 회사 이름에서 빠지고 쇼핑몰 브랜드로만 남았습니다. 회사 이름과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름이 갈라진 첫 순간입니다.
매출은 2016년에 꼭대기를 찍었습니다. 이듬해인 2017년 회사는 '컴퍼니빌더' 전략을 내세워 더블유컨셉코리아, 슈퍼리빙 같은 주요 자회사를 팔았습니다. 그 뒤 매출은 반토막이 났습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영업손실은 해마다 커졌습니다. 쌓인 결손금이 313억원에 이르렀습니다. 쇼핑몰 하나로는 더 버틸 수 없는 숫자였습니다.
다섯 번 무산된 매각 끝에, 새 주인은 2000만원을 먼저 냈습니다
2022년부터 경영권을 팔려는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원매자는 양영환, 델리오, 셀피글로벌, 오션뉴웨이브신기술조합1호, 국보 순으로 다섯 번 바뀌었고, 모두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여섯 번째 상대가 이노파이안이었습니다. 2024년 6월 7일 최대주주가 이노파이안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노파이안이 먼저 낸 돈은 계약금 2000만원이었습니다.
그 2000만원으로 지분 276만여 주를 먼저 넘겨받았습니다. 인수 대금 297억원은 나중에 두 번에 나눠 내기로 했습니다. 1차 잔금 138억원, 2차 잔금 159억원입니다.
회사를 넘겨받는 값의 거의 전부를 뒤로 미루고, 경영권부터 먼저 쥔 거래입니다. 20년 넘은 상장사의 지배권이 중고차 계약금보다 작은 돈으로 먼저 옮겨 갔습니다. 이 회사의 다음 장면들은 전부 이 거래 위에서 벌어집니다.
새 주인이 온 다음 달, 쇼핑몰 회사가 탄소를 잡겠다고 나섰습니다
주인이 바뀐 지 한 달 남짓 지난 2024년 7월 18일, 회사는 탄소포집 회사 카본코리아 지분 51%를 20억100만원에 사들였습니다.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붙잡는 사업입니다.
그다음 달인 2024년 8월에는 상호를 '아이에스이커머스'에서 '엑시온그룹'으로 바꿨습니다. 이커머스라는 말이 회사 이름에서 사라졌습니다. 친환경 플라스틱까지 앞세운, 친환경 회사라는 새 옷이었습니다.
쇼핑몰을 하던 회사가 탄소를 잡게 된 데에 기존 사업과의 연결고리는 없었습니다. 새 사업은 안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라 밖에서 사 와 붙인 것이었습니다.
산 값 그대로 탄소를 내놓고, 3주 뒤 배관을 샀습니다
2025년 상반기 엑시온그룹 매출을 사업별로 나눠 보면 위즈위드가 62.2%, 이산화탄소 포집이 29.9%, 커머스인프라(EDGE N2N)가 7.9%였습니다. 탄소 사업이 매출의 3할 가까이를 맡고 있던 반기입니다.
바로 그 반기 한복판인 2025년 5월 19일, 회사는 카본코리아 지분 51%(61만2000주)를 팔았습니다. 받은 돈은 20억100만원입니다. 10개월 전 산 값과 같습니다.
그리고 3주 뒤인 2025년 6월 9일, 전혀 다른 업종의 회사를 샀습니다. 반도체 공장 배관과 산업용 로봇을 시공하는 엠제이테크입니다. 보통주 180만주, 지분 100%를 75억원에 사들였습니다. 카본코리아의 3배가 넘는 값입니다.
사들인 바로 다음 날인 6월 10일에는 엠제이테크를 흡수합병하기로 했습니다. 자회사로 두지 않고 아예 본체 안으로 집어넣겠다는 결정입니다.
탄소는 1년도 머물지 못했습니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 값이 같았으니, 남은 것은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걸었던 10개월뿐입니다. 이 회사에서 사업이 얼마나 쉽게 붙었다 떨어지는지 이만큼 정확하게 보여 주는 숫자는 없습니다.
지금 이 번호가 하는 일은 남의 공장 속 배관과 로봇입니다
엠제이테크가 들어오면서 엑시온그룹의 일은 공장 안으로 옮겨 갔습니다. 공장 건물을 짓는 회사가 아닙니다. 다 지어진 반도체·2차전지 생산시설 안에 배관과 덕트를 까는 회사입니다.
반도체 공장은 가스와 약품, 공기가 정해진 길로만 흘러야 돌아갑니다. 그 길을 놓는 것이 배관이고, 공기를 빼고 넣는 통로가 덕트입니다. 이런 시설은 아무 업체나 들이지 않습니다. 엠제이테크는 국내 주요 대기업의 1차 벤더 지위를 지켜 온 업체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공장의 도장 라인입니다. 회사는 스위스 로봇회사 ABB의 산업용 로봇에 자체 제어기술 '제이시스템'을 얹어 도장로봇 자동화 설비를 설치합니다. 로봇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남이 만든 로봇을 공장 라인에 맞게 엮어 넣는 회사입니다.
엑시온그룹은 ABB 로봇사업부의 공식 시스템통합(SI) 파트너사 지위를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2025년 10월 "건설·제조·기술의 융합형 성장 플랫폼을 완성"했다며 "로봇·AI·건설이 결합된 스마트 인더스트리 혁신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파트너의 주인이 곧 바뀝니다. 2025년 10월 8일 소프트뱅크그룹이 ABB 로봇사업부를 약 7조6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엑시온그룹이 손잡은 상대가 다른 회사 밑으로 들어가는 셈이라, 이 SI 파트너 자리가 그대로 이어질지는 새 주인의 판단에 걸려 있습니다.
회사가 공시한 2026년 1분기 말 수주잔고는 428억원입니다. 앞으로 시공해서 매출로 바꿀 일감이 그만큼 쌓여 있다는 말입니다. 엑시온그룹 매출의 실체는 이제 쇼핑몰 주문이 아니라 이 공사 일감입니다.
일감은 428억원인데, 번호 자체가 흔들립니다
사업은 공장 안으로 들어갔지만 상장사로서의 사정은 거꾸로 갔습니다. 2026년 4월 21일 보통주 5주를 1주로 합치는 무상감자가 끝났습니다. 발행주식은 4648만2609주에서 929만6521주로 줄었습니다.
9일 뒤인 4월 30일 위즈위드가 문을 닫았습니다. 신규 가입은 4월 1일, 주문은 4월 10일에 이미 막혔습니다. 2025년 상반기까지 매출의 62.2%를 내던 사업이 1년도 안 돼 사라졌습니다.
2026년 6월에는 주인이 또 바뀌었습니다. 뉴퍼시픽투자조합이 80억원 규모 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약 35%를 쥐고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2000만원으로 들어왔던 이노파이안의 시대는 2년 만에 끝났습니다.
같은 달 26일, 엑시온그룹은 시가총액 미달로 관리종목에 지정됐습니다. 시장이 매긴 회사의 몸값이 거래소가 정한 선 아래로 내려갔다는 뜻입니다. 9월 15일에는 시가총액 미달이 이어져 상장폐지 우려를 알리는 시장안내 공시가 나왔습니다. 엑시온그룹 상장폐지라는 검색어가 붙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돈은 잘게 나눠 들어왔습니다. 2026년 7월 30일 회사는 SK증권을 통해 보통주 200만주를 주당 1005원에 팔아 20억1000만원을 소액공모로 모았습니다. 소액공모 한도가 30억원 미만으로 넓어진 뒤 코스닥 상장사 가운데 처음 쓴 사례입니다.
8월 18일에는 조선해양·플랜트 전문가 최수현을 총괄대표이사로 앉혔습니다. 반도체 배관 회사의 새 대표가 조선해양 출신이고, 회사는 플랜트·데이터센터 수주로 넓히겠다고 했습니다. 공장 속 배관이라는 다섯 번째 얼굴도 벌써 가장자리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엑시온그룹 전망은 이 배관이 마지막 얼굴이 되느냐에 달렸습니다
지금까지의 패턴은 분명합니다. 이 번호에 붙은 사업은 매출을 내는 중에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위즈위드는 매출의 62.2%를 내다 닫혔고, 탄소포집은 29.9%를 내던 반기에 팔렸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를 볼 때 숫자 하나보다 지켜볼 것이 있습니다. 428억원의 수주잔고가 다음 분기, 그다음 분기 보고서에서 실제 매출로 바뀌어 나오는지입니다. 그리고 흡수합병으로 본체 안에 들어온 엠제이테크가 1년, 2년 뒤에도 같은 자리에 남아 있는지입니다.
바깥 변수는 두 가지입니다. 소프트뱅크로 넘어가는 ABB 로봇사업부가 SI 파트너 자리를 어떻게 정리하느냐, 그리고 관리종목에서 벗어날 만큼 시가총액이 회복되느냐입니다. 앞의 것은 사업을, 뒤의 것은 069920이라는 번호 자체를 좌우합니다.
위즈위드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069920은 아직 쇼핑몰 번호입니다. 이 번호가 처음으로 갈아 끼울 필요가 없는 사업을 만났는지는, 반도체 공장 천장 속에 숨어 아무도 보지 않는 배관이 대답할 겁니다.
출처
- 이데일리, 엑시온그룹, 엠제이테크 흡수 합병 (2025-06-10)
- 머니투데이, 엑시온그룹, EPC 기반 로봇 사업 확장 (2025-10-15)
- 더벨, 엑시온그룹, 로봇·AI 기반 신성장 플랜 '합병체제 가동' (2025-10-14)
- 뉴데일리경제, 1세대 패션 플랫폼 '위즈위드' 4월 말 운영 종료 (2026-04-09)
- 인포스탁데일리, 엑시온그룹 새 주인, 138억 잔금 납입 이뤄질까 (2024-06)
- 블로터, SK서 분사한 1세대 구매대행 업체, 리빌딩 성공할까 (2024)
- 탑데일리, 엑시온그룹, 카본코리아 '탄소포집 사업' (2024-08)
- 딜사이트, 상호 변경 보도 (2024-08)
- 상장공시시스템, 2025년 반기보고서
- 상장공시시스템, 연결재무제표 주석
- 톱스타뉴스, 엑시온그룹 무상감자 단행 (2026-04)
- 톱스타뉴스, 엑시온그룹 시가총액 미달로 관리종목 지정
- 블로터, 엑시온그룹 새 최대주주 추가 출자 (2026-06)
- 머니투데이, 엑시온그룹 SK증권 통해 소액공모 20억 조달 (2026-07-30)
- 머니투데이, 엑시온그룹 최수현 총괄대표이사 선임 (2026-08-20)
- 엑시온그룹 공시 목록 (상장폐지 우려 시장안내, 2026-09-15)
- 네이버 증권, 069920 일별 거래량
작성 기준일 2026년 10월 2일. 이 글은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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