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도체, 공장 없이 제주 수출 73%… 칩은 대만 파운드리에서 굽는다
10월 7일 제주반도체(080220)는 장 마감 뒤 시간외 거래에서 84,900원에 체결돼 등락률 -9.29%를 기록했습니다. 이날 거래량은 192만 3,688주였고, 같은 날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약식)가 공시됐습니다.
제주 수출이라고 하면 보통 넙치나 감귤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2026년 4월, 제주 지역 전체 수출액의 73%를 혼자 낸 회사로 꼽힌 곳은 공장이 하나도 없는 반도체 회사였습니다.
투자 참고용 기업 이야기입니다. 작성 기준일 2026년 10월 7일.
공장 하나 없는 회사가 제주 수출의 절반 이상을 냅니다
숫자가 먼저 이상합니다. 2024년 11월 보도에서 이 회사가 차지한 제주 전체 수출 비중은 55%였습니다. 1년 반 뒤인 2026년 4월 보도에서는 73%로 적혔습니다.
이 회사는 원래부터 바깥에 파는 회사였습니다. 2010년대 사업보고서를 보면 매출의 90% 안팎이 수출이었습니다. 제주의 수출 통계가 이 회사 한 곳의 장사에 크게 기대고 있습니다.
공장이 없다는 점은 약점이 아니라 이 섬에 자리를 잡게 해 준 조건이었습니다. 칩을 직접 굽지 않으니 유해물질을 내보낼 일이 없고, 그래서 청정 자연을 내세우는 제주에 어울리는 제조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회사를 한 줄로 규정하면 이렇습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비워 둔 작은 메모리 자리를 지키는 설계 회사이고, 간판은 두 번 바뀌었지만 키를 쥔 사람은 그대로입니다. 「제주」는 태어난 곳의 이름이 아니라 2013년에 새로 단 간판입니다.
설계는 제주에서, 굽는 일은 대만에서 합니다
제주반도체는 칩을 그리기만 하는 팹리스입니다. 모바일·IoT·통신장비·차량용 기기에 들어가는 저전력 메모리를 설계하고, 실제 생산은 윈본드 같은 대만 파운드리에 맡깁니다. 칩을 자르고 포장하고 시험하는 후공정도 외주업체가 합니다.
무엇을 파는지는 2025년 사업보고서의 제품별 비중이 보여 줍니다. NAND MCP가 39.24%로 가장 큽니다. 저장용 낸드와 작업용 램을 한 패키지에 겹쳐 넣은 칩으로, 자리가 좁은 기기에 들어갑니다.
그다음이 DRAM(LPDRAM 포함) 22.78%, TLC NAND 12.08%, LPDDR4 8.81%입니다. Consumer DDR5가 2.55%, CRAM이 1.59%, 기타가 4.49%입니다. 하나같이 서버용 고성능 메모리가 아니라 전기를 적게 먹고 용량이 작은 쪽입니다.
공정 수준도 대표가 직접 밝혔습니다. 박성식 대표는 2026년 2월 인터뷰에서 “현재 주력 제품은 대만 업체들과 32nm 공정 등을 적용해 생산 중”이라며 “향후 20nm 이하 미세회로 공정에 대비해 추가로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업체와 협력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의 공장을 쓴다고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만 후공정 협력업체 라인에서 웨이퍼를 칩 단위로 자르다 가장자리가 깨지는 문제를 두고, 이 회사는 칼날 종류와 자르는 방식을 바꿔 가며 반복 실험했습니다. 그 뒤 2년 동안 수율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실험을 하는 사람들은 제주에 있습니다. 2024년 기준 본사 인력 135명 중 약 60%가 연구개발 엔지니어였고, 그 절반 이상이 경력 10년을 넘겼습니다.
그래서 고객은 한번 고르면 잘 바꾸지 않습니다
이 회사 칩은 아무 데나 꽂는 범용품이 아닙니다. 고객사 사양에 맞춰 만든 주문형 저전력 메모리이고, 고객의 까다로운 품질승인을 통과해야 납품이 시작됩니다.
메모리는 같은 설계라도 어느 공장에서 굽느냐에 따라 품질과 수율이 달라집니다. 제주반도체는 제품 설계 초기부터 파운드리와 공정을 같이 새로 짭니다. 그 노하우는 도면만 베껴서는 따라 할 수 없습니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계산이 간단합니다. 한번 승인한 공급사를 바꾸려면 다시 인증하는 데 돈과 시간이 듭니다. 대형 3사가 다루지 않는 작은 용량을 찾는 고객이라면 갈아탈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고객이 프랑스 보안기업 탈레스(Thales)입니다. 탈레스의 IoT·엣지 기기에 이 회사의 SRAM·pSRAM·DRAM·NAND MCP가 들어갑니다. 보안 장비 회사가 부품 공급사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주문이 몰립니다. 박 대표는 “국내외 거래처들이 자사 메모리반도체 공급 능력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를 “국내 팹리스 중 메모리반도체를 핵심 사업으로 운영하는 곳은 제주반도체가 유일하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를 지켜 온 회사의 첫 이름은 제주반도체가 아니었습니다
회사는 2000년 4월 경기 성남에서 「아펨스테크놀로지」로 문을 열었습니다. 같은 해 9월 이름을 EMLSI(Emerging Memory & Logic Solutions)로 바꿨습니다. 제주와는 아무 인연이 없는 출발이었습니다.
제주로 간 것은 2005년입니다. 코스닥 상장과 함께 본사를 서울 가락동에서 제주시로 옮겼습니다. 수도권 기업이 지방으로 옮기면 법인세를 깎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혜택을 겨냥한 이전이었습니다.
이전 직후 사건이 터졌습니다. 2006년 12월 EMLSI 임직원 6명이 경쟁사의 CMOS 이미지센서 핵심기술을 중국·대만에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2008년 12월 박성식 대표 등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2013년 3월 회사는 EMLSI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지금의 「제주반도체」가 됐습니다. 이름이 바뀐 자리에 사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2026년 인터뷰에서 슈퍼사이클을 말하는 대표도 박성식입니다.
2015년에는 최대주주 자리가 중국 자본으로 넘어갈 뻔했습니다
이름을 바꾼 지 2년 뒤, 회사는 주인이 바뀔 뻔했습니다. 2015년 6월 박성식·조형섭 대표가 보유 지분 15.55%, 약 380억원어치를 중국계 영개투자유한공사(Wing Champ Investments)에 넘기는 주식양수도 계약을 맺었습니다. 최대주주 지위까지 넘기는 계약이었습니다.
계약은 4개월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계약이 해제됐고, 사유로는 투자 규모 축소와 일정 지연, 과도한 경영 간섭이 꼽혔습니다. 국내 유일의 메모리 팹리스가 중국 자본의 회사가 될 수도 있었던 4개월이었습니다.
매각은 무산됐지만 바깥 돈을 끌어오는 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후 자회사 램스웨이를 통해 미국 DFJ와 중국 허페이시정부로부터 3,400만달러를 투자받았습니다.
2018년에는 메모리와 전혀 다른 곳에도 발을 들였습니다. 동행복권 컨소시엄의 주관사로 뽑혀 4기 복권수탁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칩 회사가 로또 사업 주관사가 된 셈인데, 이 시기 회사가 메모리 한 우물만 판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표의 지분은 10%대로 얇아졌고, 빈자리는 전환사채가 채웠습니다
2026년 현재 박 대표 지분은 10~11%대입니다. 설립 이후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여러 차례 내면서 몫이 크게 줄었습니다. 2026년 3월에도 450억원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했습니다.
전환사채는 정해 둔 값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입니다. 주식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회사가 갚아야 할 빚이고, 바뀌는 순간 주주가 늘어납니다. 공장이 없는 회사가 설계와 개발에 쓸 돈을 이 방식으로 끌어온 것입니다.
올해는 이 채권을 다루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2026년 5월 회사는 2025년 2월 발행한 60억원 규모 8회차 전환사채의 콜옵션을 전량 행사했습니다. 정해 둔 값에 채권을 되사 올 권리를 모두 쓴 것으로, 만기는 2028년 2월 26일인 채권이었습니다.
같은 달 후공정 업체 에이팩트가 제주반도체 전환사채에 투자하며 전략적 제휴를 맺었습니다. 칩을 자르고 포장하는 협력사가 이제 채권자이자 잠재 주주로 묶였습니다. 남의 손을 빌려 만드는 회사가 그 손을 돈으로 붙잡아 둔 것입니다.
박 대표는 지금을 이렇게 봅니다. “저전력(LP) DDR4 등 지난 3∼4년 동안 준비해온 메모리반도체 제품들이 슈퍼사이클을 맞아 빛을 보고 있다.” 그리고 “향후 1년 이상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회사가 26년 동안 바꾼 것은 이름과 주식 명부였습니다. 바꾸지 않은 것은 대형 3사가 비워 둔 작은 메모리 자리와 그 자리를 지킨 대표입니다. 「제주」라는 간판은 2013년에 달았지만, 그 간판을 제주 수출 통계 맨 윗줄에 올린 것은 탈레스 같은 고객의 승인 목록에 한번 올라간 칩입니다.
출처
- DART,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약식), 2026-10-07
- 파이낸셜뉴스, 「대기업이 HBM 집중할때, 틈새 메모리 시장 주도」, 2026-02-08
- 네이트뉴스, 넙치보다 반도체···제주도 수출 지형 바꾼 스타 팹리스의 힘, 2026-04-16
- 제주매일, 공장 없는 제주반도체 도내 수출 절반 이상 '성장가도', 2024-11-18
- JMP, Jeju Semiconductor Corporation 고객 사례
- 한국IR협의회 리서치센터, 제주반도체 기업분석 리포트, 2023-04-05
- 제주의소리, EMLSI 반도체 핵심기술 '국외 유출' 혐의, 2006-12
- 노컷뉴스, ㈜EMLSI 대표·직원 구속 보도, 2006-12
- 이투데이, 제주반도체 최대주주 변경 수반 주식양수도 계약 체결, 2015-06-22
- 이투데이, 제주반도체 주식양수도 계약 해제, 2015-10
- 이데일리, 제주반도체 윙챔프인베스트먼트와 주식양수도계약 해제, 2015-10
- 블로터, 에이팩트·제주반도체 'CB 혈맹' 배경, 2026-05
- datatooza, 제주반도체 60억 CB 콜옵션 전량 행사, 2026-05-15
- 제주반도체 2025 사업연도 사업보고서(DART, 2026-03-23)
작성 기준일: 2026년 10월 7일.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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