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랩 V3 회사의 해외 매출 1위는 사우디… 그 동업자가 지분 10%도 쥐었다
PC를 새로 사면 제일 먼저 깔던 프로그램, V3 백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V3를 만든 안랩(053800)이 해외에서 가장 많이 버는 나라는 미국도 일본도 아닙니다.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2024년 안랩의 해외 매출은 218억원이었고, 나라별로 나누면 사우디아라비아가 맨 앞이었습니다. 중국·베트남·일본·싱가포르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사우디는 손님 명단에만 올라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사우디 국영기업 SITE는 안랩과 합작회사를 함께 차린 동업자이고, 그 자회사 SITE벤처스는 안랩 지분 10%를 가진 주주입니다. 해외 사업의 동업자가 회사 주주 명부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안랩은 더 이상 V3 회사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우디와 사업으로, 또 지분으로 묶인 보안 회사입니다. 올해 상반기 이익이 왜 크게 늘었는지, 창업자 안철수 의원이 14년 만에 주식을 산 때가 왜 하필 지금이었는지도 이 연결을 따라가면 풀립니다.
투자 참고용 글입니다. 작성 기준일은 2026년 10월 8일이며, 앤트가드 시그널 가격(2026년 10월 7일 종가 기준)과 유의사항은 글 맨 아래에 있습니다.
이 회사, 뭐 하는 회사인가
안랩이 파는 것은 크게 두 덩어리입니다. 하나는 보안 소프트웨어와 장비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붙어 일하는 서비스입니다. 소프트웨어 쪽에는 V3 말고도 이름이 낯선 제품이 여럿 있습니다. EDR은 회사 PC와 서버에 깔려 수상한 움직임을 잡고 바로 막습니다. XDR은 여러 보안 제품이 울리는 경보를 한 화면에 모아 공격의 앞뒤를 이어 보게 해 줍니다. MDS는 일반 백신을 피해 몰래 들어오는 공격을 따로 골라내고, SOAR는 경보가 뜨면 사람이 하던 대응 절차를 자동으로 돌려 줍니다.
서비스 쪽은 보안관제와 보안컨설팅입니다. 보안관제는 고객 회사의 전산망을 안랩 직원이 대신 지켜보다가 공격이 보이면 대응하는 일입니다. 컨설팅은 고객의 보안 상태를 점검하고 고칠 곳을 짚어 줍니다. 돈을 내는 쪽은 공공기관·금융·제조·일반 기업·헬스케어 고객입니다. 공공기관과 맺은 계약만 100건에 이릅니다. 개인이 무료로 받아 쓰는 V3는 이름을 알리는 간판이고, 실제 매출은 지켜야 할 전산망이 큰 기관과 기업에서 나온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국내에서 안랩의 위치는 숫자로 분명합니다. 국내 보안 솔루션 선호도 조사에서 안랩은 8개 부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안티바이러스 26.2%, EDR 23.3%로 앞섰고, SOAR도 18.6%로 1위였습니다. 눈여겨볼 곳은 XDR입니다. 이 분야는 크라우드스트라이크·마이크로소프트·센티넬원 같은 글로벌 업체와 정면으로 겹치는데, 안랩이 19.5%를 받아 마이크로소프트(17.4%)보다 2.1%포인트, 센티넬원(12.3%)보다 7.2%포인트 높았습니다. 국내 경쟁사로는 SK쉴더스·지니언스·이스트시큐리티가 꼽히지만, 이만큼 넓은 제품군을 한 회사가 갖춘 곳은 안랩이 첫손에 꼽힙니다.
안랩은 왜 사우디에 회사를 새로 차렸나
2024년 4월, 안랩은 사우디 국영기업 SITE와 사이버보안 합작회사 '라킨'을 세우기로 계약했습니다. 출자 비율은 안랩 25%, SITE 75%였습니다. 라킨은 그해 10월 문을 열었습니다. 합작회사는 두 회사가 돈을 나눠 내고 함께 차린 새 회사입니다. 지분 대부분을 사우디 쪽이 쥐었으니, 겉으로 보면 사우디 회사에 안랩이 기술을 대는 모양입니다.
같은 계약에는 또 하나의 돈 흐름이 들어 있었습니다. SITE의 자회사 SITE벤처스가 안랩 지분 10%를 약 744억원에 사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이 금액을 안랩의 같은 해 해외 매출 218억원 옆에 놓으면 크기가 보입니다. 1년 동안 해외에서 번 돈의 3배가 넘는 돈이 사우디에서 안랩 주식을 사는 데 들어왔습니다. 사우디는 안랩에게 일감을 주는 상대이면서 동시에 안랩의 주인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이 구조가 안랩에게 왜 유리한지는 라킨이 누구를 상대하는지를 보면 압니다. 라킨이 겨냥하는 곳은 중동·북아프리카의 공공시장입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전산망은 외국 회사가 혼자 문을 두드려서는 들어가기 어려운 시장입니다. 현지 국영기업이 대주주인 회사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안랩은 지분 25%만 넣고, 현지 동업자의 이름으로 그 시장에 들어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결과는 매출 지도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2024년 안랩의 해외 매출 218억원은 전체 매출의 8.3%까지 커졌고, 나라별 1위는 사우디아라비아였습니다. 라킨이 문을 연 그해에 이미 사우디가 안랩의 가장 큰 해외 시장이었습니다. 한국 백신 회사의 해외 지도에서 중동이 맨 앞에 오는 모습은 이 합작 구조를 빼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V3를 팔던 안랩이 해외에 보안관제를 판다
안랩의 해외 사업은 오래도록 V3 같은 소프트웨어를 수출하는 일이었습니다.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장사입니다. 2024년에 처음으로 다른 종류의 수출이 생겼습니다. 보안관제 같은 서비스 부문에서 131억원의 수출 매출이 나온 것입니다. 1년 해외 매출이 218억원인 회사에서 서비스 수출만 131억원이 잡혔습니다. 작은 시험 삼아 시작한 규모가 아닙니다.
서비스 수출은 소프트웨어 수출과 성격이 다릅니다. 보안관제는 고객의 전산망을 안랩 사람들이 대신 지켜보는 일이라, 고객은 제품이 아니라 운영하는 사람을 믿고 맡깁니다. 한번 맡긴 감시 업무는 쉽게 다른 회사로 옮기지 않습니다. 그동안 쌓인 공격 기록과 그 회사 전산망에 대한 이해가 함께 넘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비스 매출은 한번 생기면 해마다 다시 들어오는 돈이 되기 쉽습니다.
동남아에서는 길을 다르게 냈습니다. 안랩은 동남아 제조업 고객을 먼저 확보하고, 그 사례를 발판으로 금융과 정부 쪽으로 넓히는 방식을 씁니다. 공장 전산망을 지켜 본 경험이 은행과 관공서를 설득하는 근거가 됩니다. 2024년 나라별 해외 매출에서 베트남은 사우디아라비아·중국 다음 순서였습니다.
올해 1월 내놓은 사업 계획도 같은 방향입니다. 안랩은 중동의 라킨, 그리고 대만·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 같은 동남아에서 거점을 10개 이상 더 확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거점이 늘면 현지에서 직접 지켜 줄 수 있는 고객도 늘어납니다. 백신을 수출하던 회사가 감시와 대응이라는 일을 통째로 수출하는 회사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안랩 상반기, 매출 9.1% 늘 때 영업이익은 62.3% 늘었다
2026년 상반기 안랩의 연결 매출은 1,304억원, 영업이익은 73억원이었습니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9.1% 늘었고, 영업이익은 62.3% 늘었습니다. 이익 증가율이 매출 증가율의 6배를 넘습니다. 같은 돈을 더 벌었는데 남는 돈은 훨씬 빠르게 불어났습니다.
성장을 끈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우디 합작회사 라킨을 거친 해외 매출입니다. 2분기부터 라킨을 통한 글로벌 매출이 1년 전보다 10% 넘게 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로트러스트 제품 XTG입니다. XTG 매출은 1년 전보다 두 배 넘게 뛰었습니다. 상반기 성장의 두 축 가운데 하나가 또 사우디에서 나왔습니다.
제로트러스트는 이름 그대로 아무도 먼저 믿지 않는 보안 방식입니다. 예전 보안은 회사 건물과 사내망 안에 들어온 사람은 믿어 주고 바깥만 막았습니다. 집과 카페에서 일하고 외부 클라우드를 쓰는 일이 늘면서 안과 밖의 경계가 흐려졌습니다. 제로트러스트는 사내에서 접속한 사람이라도 접속할 때마다 누구인지, 그 기기가 안전한지를 다시 확인합니다. XTG는 그 확인을 맡는 관문입니다.
매출보다 이익이 빨리 자란 까닭은 무엇이 팔렸는지에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한번 만들어 두면 더 팔아도 드는 비용이 크게 늘지 않습니다. 이미 만든 제품이 해외와 새 분야에서 더 팔리면 늘어난 매출의 상당 부분이 이익으로 남습니다. 상반기 숫자는 안랩의 성장이 바로 그런 제품과 해외 사업에서 나오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안랩 V3와 XDR에 AI 비서 '애니'가 붙는 이유
안랩은 AI 탐지 기술을 V3·MDS·EDR 같은 주요 제품에 넣고 있습니다. 통합보안 플랫폼 XDR에는 대화형 AI 비서 '애니(Annie)'를 붙였습니다. 올해 사업 전략의 앞머리에도 통합보안 플랫폼 '안랩플러스'와 애니를 세웠습니다. 제품을 하나씩 따로 파는 회사에서, 여러 제품을 한 판 위에 묶어 파는 회사로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
보안 담당자의 하루를 떠올리면 왜 이쪽으로 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제품이 쉬지 않고 경보를 울리고, 그중 진짜 공격을 골라내 대응하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합니다. 담당자가 적은 회사일수록 쏟아지는 경보를 다 들여다볼 여유가 없습니다. 대화형 비서가 붙으면 담당자는 경보 기록을 하나하나 뒤지는 대신 물어보고 답을 받습니다.
돈의 흐름으로 보면 이 변화는 제품 하나를 더 파는 일이 아닙니다. 고객이 안랩 플랫폼 하나에 여러 보안 업무를 모아 둘수록 다른 회사 제품으로 갈아타기 어려워집니다. 8개 부문 1위라는 넓은 제품군이 한 플랫폼 위에서 묶이면, 제품을 따로 팔 때보다 고객을 훨씬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습니다. 넓은 제품군은 이때 비로소 무기가 됩니다.
보안이 왜 돈이 되는지는 최근 사건이 보여 줬습니다. 2026년 10월, 경찰은 신한은행·KB국민은행·하나은행 등에서 확인된 금융권 해킹 사고에 정식 수사를 시작하고 28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투입했습니다. 금융은 안랩의 주요 고객군 가운데 하나입니다. 큰 은행들이 한꺼번에 사고를 겪으면 금융권 전체의 보안 투자가 늘어나는 쪽으로 움직이고, 그 돈이 향하는 곳 중 하나가 국내에서 가장 넓은 제품군을 가진 회사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14년 만에 안랩 주식을 산 때, 사우디 지분 10%
안랩 창업자 안철수 의원은 2005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이후 정치인으로 길을 바꿨습니다. 그래도 최대주주 지위는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2026년 6월 30일부터 7월 6일 사이, 그는 안랩 주식 4만주를 장내에서 샀습니다. 14년 만의 매수였습니다. 7월 22일부터 29일 사이에는 1만주를 더 샀습니다.
두 번의 매수로 그의 개인 지분율은 17.17%가 됐습니다. 그가 세운 동그라미재단, 그리고 사우디 SITE벤처스까지 합친 최대주주 측 전체 지분율은 36.15%로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사우디 지분 10%가 다시 등장합니다. 창업자 쪽 지분을 셀 때 중동 국영기업 자회사의 지분이 같은 편으로 묶여 있습니다.
매수 시점에는 상법 개정안이 걸려 있었습니다. 자사주 소각이 원칙이 되는 상황에서 SITE벤처스가 지분을 정리하면, 안철수 측 의결권은 32.27%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33.4%는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막을 수 있는 선입니다. 특별결의는 합병이나 회사 규칙 변경처럼 회사의 뼈대를 바꾸는 결정에 필요한 높은 찬성 문턱이고, 3분의 1을 넘게 쥐고 있으면 그런 결정을 막을 수 있습니다. 32.27%는 그 선에서 1.13%포인트 모자랍니다.
이 장면은 사우디와의 연결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 줍니다. 해외 매출 1위 나라의 국영기업이 합작회사의 대주주이고, 그 자회사가 안랩 지배구조의 한 축을 받치고 있습니다. 경영에서 손을 뗀 창업자가 직접 지분을 늘린 시점이 바로 그 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계산과 겹칩니다. 안랩의 성장 엔진과 지분 방어는 같은 동업자에게서 출발합니다.
V3 회사에서 사우디의 보안 동업자로
안랩을 V3로만 기억하면 이 회사가 지금 돈을 버는 방식을 놓칩니다. 매출은 기관과 기업의 전산망을 지키는 일에서 나오고, 해외에서는 소프트웨어 대신 보안관제라는 서비스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해외 시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이고, 그 시장으로 들어가는 문은 사우디 국영기업과 함께 세운 라킨입니다.
그 동업자는 안랩 지분 10%를 가진 주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안랩의 해외 성장 이야기와 창업자의 지분 이야기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PC 구석에서 바이러스를 잡던 회사가 이제 남의 나라 공공시장을 지키는 일로 돈을 벌고, 그 일을 맡긴 나라가 회사 주주 명부의 한 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DART) 안랩 공시 및 네이버 금융 재무 정보, 아주경제(2024-04-01), 블로터(2025-04-01), ZDNet Korea(2026-01-04), 뉴스와이어(2026-07-29), 파이낸셜뉴스(2026-10-06), 더벨(2026-07-06), 머니투데이방송(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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