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L의 'SUN'은 선창의 머리글자… 공장에선 합판 대신 로션 펌프·분무기 머리
SUN&L(002820) 주가가 2026년 10월 8일 14.63% 오른 1,136원을 기록했습니다. 거래량은 24만8,435주였습니다.
이 회사를 '선창산업'이라는 옛 이름으로 기억하는 분이 많습니다. 합판을 만들던 그 회사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회사 공장에서 나오는 것은 나무판이 아닙니다. 로션 병 위에 꽂혀 누르면 내용물이 나오는 플라스틱 펌프, 손가락으로 당기면 물이 뿜어지는 분무기 머리입니다.
SUN&L은 간판의 첫 글자만 목재 시절에서 가져오고, 몸은 화장품 용기 공장으로 옮겨 간 회사입니다. 이름의 'SUN'은 '선창'의 머리글자입니다. 그리고 2024년 장부에는 아직 '목재부문'이 매출의 24.3%로 남아 있습니다. 나무를 깎는 기계는 그해 1월에 이미 모두 멈췄는데도 그렇습니다.
투자 참고용 기사입니다. 작성 기준일 2026년 10월 8일.
선창산업은 한 집안에서 갈라져 나온 두 번째 목재회사였습니다
창업주 정해수는 성창기업 서울사무소에서 일하던 사람입니다. 할아버지 정태성은 성창상점을 세웠고, 작은아버지 정해린은 성창기업을 이끌었습니다. 한 집안에서 성창기업과 선창산업, 이름이 한 글자 다른 두 목재회사가 나온 것입니다.
회사 이름 '선창(鮮昌)'은 창업주의 아호에서 왔습니다. 1959년 정해수가 사들인 곳은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옛 조선연탄 공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가 처음 판 것은 나무가 아니라 연탄이었습니다. 1965년 비료·석회로 넓혔고, 1967년에야 제재와 합판을 시작했습니다. 1969년에는 합판을 해외로 내보냈고, 1973년 가구까지 손을 뻗은 뒤 1976년 상장했습니다.
2009년 정연준 부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선창의 정신과 50년 역사를 발판으로 또 다른 50년을 향해 새롭게 발전해 나가겠다.”
이 회사의 역사를 처음부터 읽으면 이 말이 다르게 들립니다. 선창산업은 원래 나무 회사로 태어난 게 아닙니다. 연탄에서 나무로 한 번 옮겨 간 회사입니다. 지금 나무에서 플라스틱으로 옮기는 것은 이 회사에게 두 번째 이사입니다.
그 두 번째 이사는 2023년, 합판 공장을 끄면서 시작됐습니다
인건비가 오르면서 국내 목재산업의 경쟁력은 계속 떨어졌고, 회사의 사세도 내리막을 탔습니다. 결국 합판 생산은 2023년 4월, 나무 섬유를 눌러 만드는 MDF와 원목을 켜는 제재는 2024년 1월에 멈췄습니다. 60여 년 이어 온 목재 제조가 9개월 사이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숫자는 다른 얘기를 합니다. 2024년 연결 매출 3,393억원을 부문별로 나누면 이렇습니다.
| 부문 | 2024년 매출 비중 |
|---|---|
| 인테리어부문 | 56.3% |
| 목재부문 | 24.3% |
| 생활용품부문 | 18.8% |
공장을 다 끈 목재부문이 매출의 4분의 1을 냅니다. 비밀은 유통입니다. 선창산업은 직접 만드는 일과 함께 나무를 사 와서 파는 종합목재 유통도 해 왔고, 제조가 빠진 자리에 그 일이 남았습니다. 이 회사를 '목재회사'로 기억하는 게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이제는 나무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나무를 파는 회사입니다.
같은 보고서의 설비 가동률도 이 이사를 보여 줍니다. 합판 설비가 33.7%로 가장 낮고, 분무기 머리인 트리거 스프레이가 60.0%로 가장 높습니다. 화장품 용기는 54.3%, 펌프 디스펜서는 37.7%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숫자는 펌프입니다. 새 사업의 간판 제품인데 기계가 열 시간 중 여섯 시간 넘게 쉬었습니다. 공장은 옮겨 왔지만 주문은 아직 그 공장을 다 채우지 못했습니다.
나무가 빠진 자리는 1972년생 생활용품 회사 다린이 채웠습니다
SUN&L과 다린을 함께 검색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다린은 1972년 세워진 생활용품 업체입니다. 선창산업은 2015년 다린 지분 80%를 샀고, 2017년 나머지 20%까지 사들였습니다. 2021년에는 아예 흡수합병했습니다.
합병으로 들어온 제품은 화장품·생활용품에 쓰는 플라스틱 용기입니다. 샴푸나 로션 병을 누르면 내용물이 나오게 하는 펌프 디스펜서, 세정제 병의 방아쇠를 당기면 액체가 뿜어지는 트리거 스프레이어, 그리고 손소독제입니다.
같은 2021년, 회사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3월 26일 주주총회에서 사명 변경을 의결했고 4월 12일부터 선앤엘(SUN&L)이 됐습니다. 'SUN'은 '선창'의 머리글자를 그대로 가져왔고, 'L'에는 'Life style Level-up'이라는 새 뜻을 붙였습니다. 옛 이름의 첫 소리는 지키고, 뒤에는 생활용품을 달았습니다.
다린 공장도 그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창원 마산자유무역지역을 떠나 경남 창녕군 영산면으로 갔습니다. 대지 5,800평, 건평 3,300평 공장에서 플라스틱 원료를 넣는 단계부터 완제품을 포장하는 단계까지 한 지붕 아래서 처리합니다. 충북 보은 공장에서는 화장품 용기와 손소독제를 만듭니다.
합판을 켜던 회사의 생산 현장이 지금은 사출기 앞입니다. 한때 원목이 들어오던 자리에 플라스틱 알갱이가 들어갑니다.
펌프를 키우려고 애경 출신 대표를 데려오고 이루팩을 샀습니다
2024년 3월 대표이사가 서성교에서 이윤규로 바뀌었습니다. 이윤규 대표는 애경산업에서 30여 년을 일한 사람입니다. 샴푸와 세제를 파는 쪽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을, 그 병뚜껑을 만드는 회사의 대표로 앉혔습니다.
석 달 뒤인 2024년 6월 25일, 회사는 화장품 용기 업체 이루팩 지분 66.7%(20만주)를 20억원에 사기로 했고 7월 5일 취득을 마쳤습니다. 이루팩은 2009년 세워진 회사로, 스킨·로션 같은 기초 화장품과 색조 화장품의 용기를 만듭니다.
다린이 병 위의 펌프를 만든다면 이루팩은 그 펌프가 꽂히는 병을 만듭니다. 머리와 몸통을 한 회사에서 함께 내놓겠다는 계산이 이 인수의 뼈대입니다.
이윤규 대표는 “이루팩에 대한 투자는 뷰티 사업 확대 전략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다.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로 고객사를 확대하고 더욱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생활뷰티사업본부장은 더 구체적이었습니다. “이루팩 인수를 통해 뷰티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것이며, 연구개발, 영업·마케팅, 금형·사출·조립 등 전반에서 전략적 시너지를 발휘할 것.” 틀을 깎고(금형), 플라스틱을 녹여 붓고(사출), 부품을 맞추는(조립) 공정을 한 줄로 잇겠다는 말입니다.
누가 이 펌프를 사 가는지도 장부에 흔적이 있습니다. 2024년 사업보고서는 “당기 중 연결실체 매출액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고객은 없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회사 전체 매출을 혼자 떠받치는 큰 고객은 없습니다. 한 브랜드에 목을 매지 않는 대신, 하나의 큰 주문이 공장을 채워 줄 일도 없습니다. 펌프 가동률 37.7%는 그 대가로 읽힙니다.
20억원에 산 회사에서 29억원의 손실이 나왔습니다
계산은 처음부터 맞지 않았습니다. 이루팩은 2025년 3분기까지 누적 23억원 적자를 냈고, 인수한 해의 손실까지 합치면 29억원이었습니다. 20억원을 주고 산 회사가 1년 반 동안 쌓은 손실이 산 값을 넘었습니다.
회사 전체도 사정이 비슷했습니다. 2024년 연결 영업손실은 59억원이었습니다. 2026년 1분기 연결 매출은 1년 전보다 28.7% 줄었습니다.
흐름이 바뀐 건 2026년 2분기입니다. 이루팩이 영업이익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회사는 “2분기에는 별도 기준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고, 포항 임야 등 일부 보유자산 매각을 통해 연결기준 당기순이익도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문장은 두 개의 흑자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장사로 번 흑자이고, 다른 하나는 땅을 팔아서 생긴 흑자입니다. 펌프 공장이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앞쪽입니다. 뒤쪽은 옛 자산을 덜어 내는 과정에서 나온 숫자입니다.
이제 가장 큰 칸이던 인테리어도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2024년 매출의 56.3%를 낸 인테리어부문은 목창호와 가구 시공을 포함한 사업입니다. 새 아파트에 문과 붙박이 가구를 넣는 일이라 건설 경기를 그대로 탑니다. 2026년 1분기 인테리어 실적이 줄어든 이유도 신축 아파트 건설 경기 하락이었습니다.
2026년 9월 4일 회사는 자회사 선앤엘인테리어 지분 100%(260만주) 매각을 추진한다고 공시했습니다. 'SUN&L 매각'으로 검색되는 공시가 바로 이것입니다. 회사 전체가 아니라 인테리어 자회사를 내놓는 일입니다.
두 달 앞서서는 자기 주식도 정리했습니다. 2026년 7월 14일 보통주 54만4,785주(장부가 약 28억원)를 소각해 발행주식이 1,260만7,989주에서 1,206만3,204주로 줄었습니다. 회사는 “이번 자기주식 소각 결정은 밸류업 계획 공시 이후 주주가치 제고를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책임경영의 강력한 의지다. 앞으로도 일회성이 아닌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통해 기업가치를 꾸준히 높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말이 무겁게 들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연준 부회장 체제가 20년을 넘겼고, 오너 일가 지분은 46%대입니다. 그런데 2026년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은 13.3%로 코스피 평균 55.3%의 4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ESG 등급은 3년 연속 'C'였습니다.
자사주 소각과 자회사 매각은 그 숫자를 바꾸겠다는 첫 행동입니다. 한 집안이 오래 쥔 회사가 이제 주주에게 무엇을 돌려줄지 장부로 보여 주기 시작했습니다.
1959년 연탄 공장 터를 사서 시작한 회사가 67년 뒤 직접 만드는 물건은 손바닥에 올라가는 크기가 됐습니다. 합판 한 장을 팔던 회사가 이제 펌프 하나, 병 하나를 팝니다. 간판의 SUN 세 글자만이 답십리 연탄 공장 시절을 기억합니다.
출처
- KIND 상장공시시스템 — 선앤엘 사업보고서(제67기), 2025-03-21
- 딜사이트 — [SUN&L 톺아보기] 정연준 부회장 체제 20년…지배구조 개선 '걸음마', 2026-02-05
- 딜사이트 — [SUN&L 톺아보기] 목재부문 생산 중단…생활뷰티 전환 '험로', 2026-02-09
- 머니투데이(더벨) — SUN&L, 화장품 용기 제조 전문기업 '이루팩' 인수, 2024-06-25
- 이데일리마켓인 — 선앤엘, 20억에 산 이루팩 적자는 29억…신사업 추진 '삐걱', 2025-12-31
- 헤럴드경제 — 선앤엘 자회사 '이루팩', 2분기 영업이익 흑자…"체질 개선 성과", 2026-08-20
- 스타뉴스 — 선앤엘(SUN&L), 주주가치 제고 위해 보유 자기주식 54만여 주 소각, 2026-07-15
- 비즈니스포스트 — [Who Is ?] 정연준 선앤엘 부회장, 2024-10-29
- 네이트뉴스 — 선앤엘, 인테리어 지분 매각 추진…밸류업 착수, 2026-09-04
- 장업신문 — ㈜다린, ㈜SUN&L로 사명 바꾸고 새롭게 도약, 2021-10-06
- SUN&L 공식 홈페이지
- 네이버 증권 — SUN&L(002820) 시세, 2026-10-08
작성 기준일 2026년 10월 8일.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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