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을 만든다는 회사가 자기 공장은 없었다. 그런데 그 회사가 만든 브랜드는 미국 세포라에 공급 계약을 맺었다. 본느의 회사 소개와 연혁을 나란히 놓으면 생기는 의문이다. 생산설비가 없던 회사는 대체 무엇을 쌓아 유통업체의 문 앞까지 갔을까.
본느가 스스로 내세우는 출발점은 ‘생산설비 없는 ODM’이다. ODM은 고객의 브랜드로 팔릴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까지 맡는 사업이다. 공장을 갖지 않은 채 그 일을 했다는 점에서, 본느의 이야기는 화장품 성분보다 제품 하나를 완성하는 순서에서 시작된다. 본느 창업자 이야기
처음부터 업계의 답을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공동창업자가 회사 홈페이지에 남긴 회고에는 조금 의외인 대목이 있다. 사업 초기에는 화장품 산업과 생산을 잘 몰랐고, 모르는 것을 물으며 배웠다는 설명이다. 멋진 공장을 먼저 지어 고객을 기다렸다는 성공담과는 출발이 다르다. 이 회사의 초창기를 설명하는 재료는 설비 자랑보다 질문과 고객 계약이다.
그렇다고 화장품을 만들어줄 공장 전화번호만 알아내면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제품의 내용물과 그것을 담을 용기, 브랜드 디자인, 출시할 나라에서 필요한 준비가 한 제품 안에서 맞아야 한다. 고객은 그 과정의 일부가 아니라 판매할 수 있는 완성품을 원한다.
본느의 현재 ODM 안내를 보면 그 사이에 놓인 업무가 보인다. 원료 조달과 제품 포트폴리오 제안부터 브랜드 디자인까지 다루고, 제조사·연구소·용기 업체의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해외 고객에게는 수출 서류와 제품 등록을 지원하는 조직도 안내한다. 공장을 직접 돌리는 일의 바깥에도 제품 출시를 성사시켜야 하는 일이 남아 있는 셈이다. 본느 ODM 사업 안내
공장 없는 본느, 화장품 ODM에서 맡는 일
여기서 ‘공장이 없다’는 말의 의미가 바뀐다. 제조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제조는 협력사가 수행하고, 본느는 고객의 요구와 생산에 필요한 여러 기능을 연결하는 구조다. 회사가 돈을 받는 근거도 설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공급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제조사가 정해져도 본느의 업무가 끝나지 않는 이유다. 내용물이 준비돼도 용기가 맞지 않으면 완제품이 되지 않고, 제품이 나와도 판매국에 필요한 등록이 끝나지 않으면 출시가 늦어질 수 있다. 고객은 이 단계들을 하나씩 구매하기보다, 자기 브랜드로 판매할 완성품을 기다린다.
그렇다면 고객이 공장에 직접 주문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고객이 개발과 생산을 직접 조율할 수도 있다. 필요한 인력과 경험이 있다면 협력업체를 따로 고르는 편이 나을 수 있다. 공장이 없는 회사가 중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치가 생기지는 않는다. 여러 일을 맡겼을 때 고객이 직접 처리하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
본느가 소개하는 원료·디자인·등록 지원은 그런 연결 지점에 놓여 있다. 이 사업을 살펴볼 때는 협력업체가 많다는 설명보다 고객이 어떤 일을 한꺼번에 맡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반대로 계약과 품질에 문제가 생길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도 고객의 선택에 들어간다.
이렇게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만드는 회사 앞에는 다음 질문이 남는다. 만드는 과정을 묶을 수 있다면, 자기 이름을 붙인 브랜드도 운영할 수 있을까.
본느 터치인솔 출시 뒤 늘어난 유통·판매 부담
본느는 2009년 설립됐고, 2012년 3월 자체 브랜드 터치인솔을 출시했다. 이어 2014년 10월 미국 세포라 공급 계약을 연혁에 남겼다. 공장 없는 ODM이라는 방식과 자체 브랜드의 해외 공급이 한 회사 안에 나란히 놓인 것이다. 본느 공식 연혁
자기 브랜드를 붙이면 제품을 만드는 데서 한 단계가 더 늘어난다. 소비자에게 닿을 유통 경로를 확보하고, 다른 제품 대신 고를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세포라 계약은 그 유통 경로와 연결된 실제 사건이지, 공장 없는 방식이면 누구나 해외에서 성공한다는 증명은 아니다.
자체 브랜드에서는 질문이 한 번 더 바뀐다. 주문한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에 더해, 소비자가 매대에서 그 제품을 고르게 해야 한다. ODM 경험과 브랜드 성공은 연결될 수 있지만 같은 능력은 아니다. 유통·판매 부담까지 생기므로 공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비용이 적은 사업이라고 끝낼 수 없다.
세포라 계약 뒤에도 비용표는 남았다
그렇다면 공장을 갖지 않은 본느는 비용에서도 가벼운 회사였을까. 회사가 공개한 2025년 연결 손익계산서는 다른 질문을 남긴다. 매출에서 매출원가를 뺀 이익은 있었지만, 판매비와관리비가 그보다 커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제품을 공급해 남기는 돈과 회사 전체가 끝내 남기는 돈은 같지 않았다. 본느 2025년 연결 재무정보
이 숫자는 연결회사 전체의 결과다. 터치인솔 한 브랜드가 손실을 냈다거나, 세포라 계약 때문에 비용이 늘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다. 다만 공장이 없다는 출발점만으로 고정된 수익성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보여준다. 생산을 밖에 맡긴 뒤에도 제품을 개발하고 고객에게 팔고 조직을 운영하는 일은 회사 안에 남는다.
본느의 이야기에는 두 번의 문이 나온다. 처음에는 고객 브랜드의 제품을 완성하는 문, 다음에는 자기 브랜드를 유통업체에 들여놓는 문이다. 2014년 세포라 계약은 두 번째 문을 통과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문을 열었다고 장사가 끝나지는 않았다. 공장 없는 회사가 맡은 일은 ‘연결’이었고, 그 연결을 계속 운영하는 비용까지 감당해야 비로소 이익이 남는 장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