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은 왜 파리 편집숍에서 10년 남의 옷을 판 뒤에야 자기 옷을 꺼냈나


백화점 여성복 층을 걷다 보면 꼭 지나치게 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타임(TIME)입니다. 이 이름이 2026년 F/W 시즌 파리패션위크 공식 캘린더에 올랐습니다. 국내 기성복 브랜드로는 처음입니다. 기성복은 맞춤옷이 아니라 치수별로 미리 만들어 매장에 내놓는 옷입니다. 동네 백화점에서 보던 옷이 세계 패션 회사들이 쇼를 하는 바로 그 일정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장면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한섬(020000)이 파리에 현지 법인을 세운 것은 2013년입니다. 공식 캘린더까지 13년이 흘렀습니다. 그 첫걸음은 자기 옷이 아니라 남의 브랜드를 섞어 파는 작은 편집숍이었습니다. 한섬을 백화점에 옷을 대는 회사로만 알면 이 회사의 절반을 놓칩니다. 한섬은 10년 넘게 파리에서 자기 이름을 꺼낼 때를 고른 회사이고, 그 순서를 따라가면 이 회사가 무엇으로 돈을 벌려 하는지가 보입니다.
투자 참고용 글입니다. 작성 기준일은 2026년 10월 12일이며, 앤트가드 시그널 가격(2026년 10월 8일 종가 기준)과 유의사항은 글 맨 아래에 있습니다.

이 회사, 뭐 하는 회사인가
한섬은 1987년 세워진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 회사입니다. 옷을 직접 기획해 만들고, 직접 팝니다. 간판은 자체 브랜드입니다. 여성복으로 타임·마인·시스템·SJSJ가 있고, 남성복으로 타임옴므·시스템옴므가 있습니다. 여기에 랑방 컬렉션 같은 라이선스 브랜드가 붙습니다. 라이선스는 해외 브랜드의 이름을 빌려 국내에서 옷을 만들어 파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축은 해외에서 그대로 들여와 파는 옷입니다. 클로에, 씨바이클로에, 발렌시아가, 랑방, 지방시 같은 럭셔리 브랜드를 직수입합니다. 무이, 톰그레이하운드 다운스테어즈는 여러 해외 브랜드를 한 매장에 모아 파는 멀티숍입니다. 손님은 주로 백화점에서 옷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한섬의 대표 브랜드 타임은 30~40대 여성이 중심 고객입니다.
돈이 들어오는 길은 넓습니다. 2026년 8월 기준 국내 백화점·아울렛·직영점 매장이 1,323개입니다. 온라인에서는 더한섬닷컴, H패션몰, 온라인 편집숍 EQL을 직접 운영합니다. 해외에서는 84개 업체에 입점해 있습니다. 매장 수로 견주면 국내 1,323개 대 해외 84개입니다. 지금 한섬의 몸통은 국내 백화점이고, 해외는 이제 막 문을 두드리는 단계입니다. 대표이사는 2020년부터 회사를 이끄는 김민덕 사장입니다.

한섬은 파리에 자기 옷보다 남의 옷을 먼저 내놓았다
한섬이 파리에 현지 법인을 세운 것은 2013년입니다. 이듬해인 2014년, 파리 마레지구에 편집숍 '톰그레이하운드 파리'를 냈습니다. 편집숍은 한 회사 옷만 파는 매장이 아닙니다. 여러 브랜드의 옷을 골라 한 가게에 섞어 파는 곳입니다.
눈여겨볼 것은 순서입니다. 한섬은 그 가게 간판에 타임이나 시스템을 내걸지 않았습니다. 여러 브랜드를 섞어 팔며 파리 손님이 무엇을 집고, 어떤 옷에 지갑을 여는지부터 익혔습니다. 자기 옷을 처음부터 앞세웠다면 첫해 반응이 곧 그 브랜드의 성적표가 됐을 것입니다. 편집숍은 손님을 배우는 동안 자기 브랜드 이름에 흠을 남기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처음 꺼낸 것은 2019년입니다. 시스템과 시스템옴므를 파리패션위크에 올렸습니다. 법인을 세우고 6년 뒤였습니다. 그리고 2024년 6월, 10년 동안 남의 옷을 팔던 그 편집숍을 시스템 플래그십스토어로 바꿨습니다. 플래그십스토어는 한 브랜드가 자기 얼굴로 내세우는 대표 매장입니다.
한 가게의 간판이 바뀌기까지 10년이 흘렀습니다. 이 회사의 해외 전략은 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습니다. 먼저 배우고, 나중에 이름을 건다. 빠른 길 대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골랐습니다.

한섬 타임, 국내 기성복 최초로 파리 공식 캘린더에 오르다
2026년 F/W 시즌, 여성복 타임의 글로벌 라인 '타임 파리'가 파리패션위크 공식 캘린더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국내 기성복 브랜드로는 처음입니다. 공식 캘린더는 주최 측이 정한 공식 쇼 일정표입니다. 타임 파리는 다음 시즌인 2027 S/S에도 연속으로 참가했습니다. 한 번 오르고 끝난 것이 아니라 두 시즌 이어서 무대에 섰습니다.
무대 밖 매장도 같이 열렸습니다. 타임 파리는 파리 퐁뇌프 다리 앞 사마리텐 백화점에서 2개월 동안 팝업스토어를 운영했습니다. 팝업스토어는 정해진 기간에만 여는 임시 매장입니다. 사마리텐에서 국내 패션 브랜드가 연 첫 공식 팝업이었고, 타임 파리로서는 첫 해외 오프라인 매장이었습니다.
남성복도 움직였습니다. 시스템옴므는 2026년 1월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입점했고, 영국 런던 해러즈 백화점에도 팝업을 냈습니다. 파리와 런던을 대표하는 백화점 세 곳에 한섬의 옷이 한 해 안에 들어갔습니다. 편집숍에서 남의 옷을 팔던 회사가 이제 남의 백화점에 자기 옷을 겁니다.
이 이름표가 돈이 되는 곳은 해외 매장만이 아닙니다. 국내 백화점에서 타임 재킷을 고르는 손님에게 '파리 공식 캘린더에 오른 브랜드'라는 한 줄은 그 옷값을 받쳐 주는 근거가 됩니다. 패션에서 값을 정하는 것은 원단보다 이름입니다. 한섬이 파리에서 사 오는 것은 판매량이 아니라 이름값이라고 봐야 합니다.

캘빈클라인이 떠난 뒤, 한섬이 자기 브랜드에 힘을 싣는 이유
한섬의 옷장에는 한때 CK캘빈클라인이 있었습니다. 해외 브랜드 이름을 빌려 파는 라이선스 사업의 한 축이었습니다. 2023년, 브랜드 주인인 PVH그룹이 10년 만에 계약을 끝내고 한국에 직접 들어왔습니다. 10년 동안 국내에서 키운 이름이 계약 한 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빌린 이름은 이렇게 움직입니다. 라이선스와 직수입 브랜드는 빨리 매장을 채워 주지만, 언제까지 팔지는 이름 주인이 정합니다. 업계에서도 아워레거시·토템 같은 수입 브랜드 도입이 한섬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자체 브랜드의 성장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평가합니다. 끝까지 한섬 것으로 남는 이름은 타임·마인·시스템 같은 자체 브랜드뿐입니다.
그 자체 브랜드에도 숙제가 있습니다. 타임의 중심 고객은 30~40대 여성인데, 오래 사랑해 온 고객이 브랜드와 함께 나이 들면서 새 손님이 들어오는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파리 무대는 이 숙제에 대한 한섬의 답입니다. 국내 백화점 매장에서 엄마 세대 브랜드로 보이던 옷을, 파리 공식 쇼에 오른 옷으로 다시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길을 고르는 방식도 분명했습니다. 같은 기간 한섬 중국법인은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한섬은 중국에서 판매량을 밀어붙이는 쪽 대신 파리에서 브랜드 위상을 다지는 느린 쪽에 돈과 시간을 썼습니다. 많이 파는 것보다 비싸게 팔 수 있는 이름을 먼저 만들겠다는 선택입니다.
더한섬닷컴 밖의 실험, 한섬 EQL은 도쿄로 갔다
한섬의 온라인 매장은 셋입니다. 자기 브랜드를 파는 더한섬닷컴, 그룹 온라인몰인 H패션몰, 그리고 온라인 편집숍 EQL입니다. EQL은 여러 브랜드의 옷을 골라 한곳에 모아 파는 온라인 가게입니다. 파리 마레지구의 편집숍을 인터넷으로 옮겨 놓은 모습과 닮았습니다.
EQL은 2025년 6월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에서 첫 해외 팝업을 열었습니다. 오모테산도는 도쿄에서 옷 가게가 모인 대표 거리입니다. 이 팝업에서 EQL은 자체 브랜드 '에센셜바이이큐엘'과 함께 어썸니즈·혼스비 같은 브랜드를 선보였습니다.
구성을 보면 파리에서 쓴 방식이 그대로 보입니다. 여러 브랜드를 섞어 손님을 모으고, 그 사이에 자기 브랜드를 끼워 반응을 봅니다. 한섬은 해외에서 처음부터 자기 이름 하나에 모든 것을 걸지 않습니다. 파리에서 10년에 걸쳐 익힌 순서를 이번에는 도쿄에서 온라인 편집숍으로 다시 밟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 한섬은 옷과 거리가 먼 사업은 정리했습니다. 2025년 1월 1일, 스킨케어 브랜드 '오에라'를 운영하던 뷰티 자회사 한섬라이프앤을 본체로 흡수합병했습니다. 새 주식을 찍지 않는 무증자 합병이었습니다. 한섬라이프앤은 쌓인 손실이 처음 넣은 자본금까지 깎아 먹은 자본잠식 상태였습니다. 뷰티를 따로 끌고 가기보다 본업인 옷에 힘을 모으겠다는 정리였습니다.
한섬은 3년간 300억원어치 자사주를 사서 없앤다
2026년 9월 18일, 한섬은 2026년부터 2028년까지 해마다 100억원씩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여 소각하기로 했습니다. 3년을 합치면 300억원입니다. 소각은 사들인 주식을 아예 없애는 것입니다. 주식 수가 줄면 남은 주식 한 주가 회사에서 차지하는 몫이 그만큼 커집니다. 첫 실행으로 100억원 규모의 보통주 소각을 결정했습니다.
배당 기준도 올렸습니다. 배당에 쓰는 돈의 기준을 별도 영업이익의 15%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높였습니다. 별도 영업이익은 자회사를 빼고 한섬 본체만 따로 본 영업이익입니다. 한 주당 최소한 주는 배당은 750원에서 800원으로 올렸습니다. 이익에서 떼어 주는 비율과 바닥 금액을 함께 올린 것입니다.
한섬의 최대주주는 현대홈쇼핑으로, 2026년 10월 2일 기준 지분 42.92%를 갖고 있습니다.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이 한섬을 포함한 그룹의 비유통 계열사 경영을 맡습니다. 소각과 배당은 큰 주주와 작은 주주에게 같은 비율로 돌아갑니다. 주주에게 돌려줄 돈의 크기를 3년치 일정표로 미리 박아 둔 결정입니다.
이 결정은 파리 이야기와 따로 놀지 않습니다. 한섬은 해외에서 서두르지 않고 이름을 쌓는 데 돈을 쓰면서도, 주주에게 돌려줄 몫은 해마다 정해진 금액으로 약속했습니다. 오래 걸리는 투자를 하는 회사일수록 주주에게 기다릴 이유를 숫자로 보여 줘야 합니다. 한섬은 그 숫자를 3년 단위로 내놨습니다.
옷을 파는 회사에서 이름값을 파는 회사로
한섬의 지난 13년은 같은 순서의 되풀이였습니다. 남의 옷을 팔며 손님을 배우고, 그 가게를 자기 대표 매장으로 바꾸고, 그다음에야 공식 무대와 간판 백화점에 자기 이름을 올렸습니다. 빌린 이름은 캘빈클라인처럼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겪은 뒤, 한섬은 끝까지 자기 것으로 남는 브랜드에 시간을 쏟았습니다. 국내 백화점 매장이 오늘의 매출을 만든다면, 파리의 일정표 한 줄은 그 매장에 놓인 옷의 값을 만듭니다.
2014년 마레지구의 작은 편집숍은 장사보다 수업에 가까웠습니다. 한섬은 그 교실에서 남의 옷이 어떻게 팔리는지 10년을 지켜본 뒤에야 자기 옷을 꺼냈습니다. 지금 파리 무대에 선 타임은 새로 태어난 브랜드가 아니라, 오래 준비한 회사가 마침내 꺼낸 답안지입니다.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DART) 한섬 공시 및 네이버 금융 재무 정보, 한국경제(2026-10-06), 비즈니스코리아·한국경제(2026-10), 한국섬유신문(2026-08-30), tinnews(2023), thebell(2025-11-06), 헤럴드경제(2025-06), 아시아투데이(2024-10-22), 파이낸셜뉴스·디지털투데이(2026-09-18)
한섬 앤트가드 시그널 — 진입·손절·목표가
한섬 · 앤트가드 시그널
기준가 21,750원 (2026년 10월 8일 종가)
진입 21,730원 (기준가 대비 -0.09%)
손절 19,800원 (기준가 대비 -8.97%)
목표1 22,520원 (기준가 대비 +3.54%)
목표2 23,300원 (기준가 대비 +7.13%)
퍼센트는 기준가 대비입니다. 네 값 모두 앤트가드 금융공학 모델이 산출했습니다.
| 진입 기준 | 폭 | 손익비 |
|---|---|---|
| 손절까지 위험 | -1,930원 (-8.88%) | — |
| 목표1까지 보상 | +790원 (+3.64%) | 0.41 대 1 |
| 목표2까지 보상 | +1,570원 (+7.23%) | 0.81 대 1 |
신호 산출 기준일은 2026년 10월 8일 종가입니다.
언제는 모델이, 왜는 리서치가.
네 값은 금융공학 모델이 계산하고, 공시·실적·테마·수급은 우리가 확인합니다.
앤트가드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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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목 위험 등급: 보통 (2026년 10월 12일 확인). 한국거래소의 관리종목·투자경고·단기과열 지정 여부와 전자공시(DART)의 감사의견·불성실공시 이력을 확인했습니다.
본문 수치는 각 출처가 명시한 날짜를 따르며 이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투자 전 전자공시(DART)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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