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렘은 50년 된 강관 회사인데 제 매출만 한 롯데타워 바닥판 사업을 사 왔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44층부터 125층까지, 82개 층 바닥 속에는 같은 철판이 들어 있다. 얇은 아연도금 강판 위에 철근을 삼각형 뼈대로 엮어 용접해 붙인 판이다. 공사 때 이 판을 깔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으면 합판으로 거푸집을 짰다가 굳은 뒤 뜯어내는 일이 통째로 빠진다. 판이 거푸집이면서 철근이다. 이름은 슈퍼데크다.

그 판을 만드는 사업의 주인이 지금은 이렘(009730)이다. 1974년 동신금속으로 출발해 코센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스테인리스 강관을 만들어 온 회사다. 2024년 1월, 이렘은 당시 최대주주였던 코스틸에게서 슈퍼데크 사업을 자산·부채·계약까지 통째로 넘겨받았다. 계약 때 공시한 값은 450억원, 최종 양수가는 약 480억원이다.

이 거래에서 봐야 할 것은 값보다 크기다. 2023년 코센이 1년 동안 판 물건이 768억원어치였다. 같은 해 코스틸 안에서 슈퍼데크가 판 것이 724억원어치다. 강관 회사가 제 매출만 한 사업을 사 왔다. 이렘의 급소는 여기다. 회사를 하루아침에 두 배로 키운 이 거래는 은행 빚을 끼고 이뤄졌고, 2년이 지난 지금도 회사는 주주에게 손을 벌려 그 값을 치르고 있다.

10월 8일 이렘은 주주에게 새 주식을 파는 유상증자의 1차 발행가를 1,060원으로 정했다. 4월에 증자를 결정할 때 잡은 예정가 2,360원의 절반이 안 된다. 들어올 돈은 113억원에서 51억원으로 줄었고, 빚 갚는 데 쓰려던 몫은 0원이 됐다.

반도체 공장의 가스관을 만들던 회사

이렘 — 본업은 반도체 공장의 가스관 도판

이렘의 본업은 녹슬지 않는 쇠관이다. 스테인리스 강관은 건설 현장의 배관, 자동차·조선의 배관과 이음쇠, 히터 속 열선 관으로 들어간다. 회사가 특히 앞세운 것은 반도체 공정 안에서 가스를 실어 나르고 나눠 보내는 관이다. 2023년 매출 768억원 가운데 704억원, 91.7%가 이 관이었다.

관은 공장이 새로 설 때 팔린다. 반도체 라인을 깔고, 플랜트를 짓고, 배를 만들 때 주문이 온다. 코센의 매출은 2020년 376억원에서 2021년 456억원, 2022년 666억원, 2023년 768억원으로 3년 만에 두 배가 됐다. 그런데 2023년 768억원어치를 팔고 남긴 영업이익은 약 10억원이었다. 100원어치를 팔아 1원 남짓 남기는 장사다. 원료인 스테인리스 코일 값이 오르내리면 그 1원은 쉽게 지워진다.

2022년 3월 이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쇠줄(선재)을 만드는 코스틸이 약 100억원어치 새 주식을 받아 지분 46.32%로 최대주주가 됐다. 코스틸에게는 따로 키워 온 사업이 하나 있었다. 슈퍼데크다.

롯데타워 82개 층 바닥을 받친 판

이렘 — 철근과 거푸집이 한 장이다 도판

코스틸은 1995년 슈퍼데크 개발에 들어가 1997년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거푸집과 철근을 한 장으로 합친 바닥판, 일체형 데크로는 국내 처음이었다. 2001년 충북 음성에 공장을 세워 생산을 모았다. 건설 현장에서 '슈퍼데크'는 제품 이름이면서 이런 판을 부르는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롯데월드타워는 전체 층의 66%에 이 판을 깔았다.

이 판을 사는 사람은 넓고 높은 바닥을 빨리 쳐야 하는 건설사다. 데이터센터, 물류창고, 상가 같은 비주거 건물이 주무대다. 거푸집을 뜯어내는 날이 사라지면 다음 층 공사가 그만큼 당겨진다. 그 시간을 사려고 현장은 값을 치른다.

그 값이 장부에 고스란히 남았다. 2023년 코스틸 안의 슈퍼데크 사업은 724억원어치를 팔아 영업이익 71억원을 냈다. 같은 해 코센은 비슷한 768억원을 팔아 10억원을 남겼다. 매출 크기는 거의 같은데 남기는 돈은 7배 차이다. 강관 회사가 탐낼 만한 사업이었다.

제 덩치만 한 사업을 은행 돈으로 샀다

이렘 — 은행이 먼저 내고 주주에게 손을 벌렸다 도판

계약은 2023년 12월 4일 맺었고, 2024년 1월 22일 임시주주총회가 승인했다. 사업을 넘긴 코스틸은 이렘의 최대주주였다. 사는 쪽과 파는 쪽이 같은 지붕 아래 있었다.

2023년 말 이렘의 총자산은 611억원이었다. 그 회사가 480억원짜리 사업을 샀다. 실사 보증금 27억5,000만원과 계약금 45억원을 먼저 냈고, 2024년 2월 28일 산업은행에서 190억원을 빌렸다. 두 달 뒤인 4월 19일 이렘은 248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쓸 곳 맨 앞에 적힌 것이 산업은행 차입금 190억원 전액 상환이었다.

사업을 산 값은 은행이 먼저 내 주고, 그 은행 빚은 주주가 갚는 순서다. 그런데 주주에게 팔 새 주식의 값이 그사이 1,598원에서 1,175원으로 내려갔다. 1,550만주를 다 팔아도 들어올 돈은 182억원 안팎으로 줄었다. 그리고 증자가 끝난 뒤에도 빚은 줄지 않았다. 차입금은 2024년 1분기 395억원에서 2025년 3분기 426억원으로 오히려 불었다. 2024년 한 해 이자비용만 47억원이었다.

바닥판이 들어온 해, 매출은 늘고 이익은 사라졌다

이렘 — 관과 판은 같은 건설 경기를 탄다 도판

숫자의 겉은 화려했다. 슈퍼데크가 2월부터 매출로 잡히자 2024년 1분기 매출은 281억원으로 1년 전보다 45% 늘었고, 그 가운데 73억원이 슈퍼데크였다. 2024년 한 해 매출은 1,098억원, 1년 전보다 43% 많았다. 회사 역사상 처음 넘긴 1,000억원이다.

속은 반대로 갔다. 2024년 영업손실 47억원, 순손실 149억원. 2025년에는 매출이 920억원으로 16% 줄었고 영업손실은 138억원, 순손실은 161억원으로 커졌다. 2023년 70억원이던 결손금은 2025년 3분기 307억원으로 네 배 넘게 쌓였다. 코스틸 아래서 71억원을 남기던 슈퍼데크는 2025년 1~3분기 28억원 적자를 냈다.

바닥판만 탓할 일이 아니다. 같은 기간 본업인 강관은 60억원을 잃었다. 잃은 돈은 오히려 원래 사업 쪽이 더 크다. 여기서 이 거래의 성격이 드러난다. 강관과 바닥판은 다른 물건이지만 사는 사람이 지갑을 여는 순간이 같다. 무언가를 새로 지을 때다. 반도체 라인이든 물류창고든 짓는 일이 멈추면 관도 판도 함께 덜 팔린다. 이렘이 슈퍼데크를 들여온 2024년, 다른 데크 업체 에스와이스틸텍의 데크 매출도 1,187억원에서 951억원으로 20% 줄었다. 이렘만 겪은 일이 아니었다. 이렘이 산 것은 다른 날씨를 타는 두 번째 다리가 아니었다. 같은 날씨를 타는 두 번째 짐이었고, 그 짐은 빌린 돈으로 졌다.

증자의 쓸 곳이 '산 값'에서 '오늘 쓸 쇠'로 바뀌었다

이렘 — 주주 돈이 오늘 쓸 쇠로 내려왔다 도판

2026년 4월 이렘은 주주에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고 주식 9주를 1주로 합치는 무상감자를 했다. 자본금은 362억원에서 40억원이 됐다. 쌓인 결손을 장부에서 덜어 내는 절차다. 곧이어 113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예정 발행가 2,360원, 쓸 곳은 운영자금 93억원과 채무상환 20억원이었다. 그사이 최대주주도 바뀌어, 4월 기준 맨 앞에는 투자조합(17.47%)이 서 있고 슈퍼데크를 판 코스틸(14.5%)은 둘째다.

10월 8일 정해진 1차 발행가 1,060원은 그 계획을 절반으로 접었다. 들어올 돈은 51억원, 그 가운데 43억원은 원자재 매입에, 7억6,000만원은 설비 보수에 쓴다. 기업은행 대출을 갚으려던 몫은 사라졌다. 1차와 2차 발행가 가운데 낮은 쪽이 최종 값이 되고, 그 값은 11월 23일 확정된다.

2년 전 증자와 나란히 놓으면 변화가 선명하다. 2024년 주주에게 받은 돈은 바닥판 사업을 산 값, 곧 은행 빚을 갚는 데 쓰기로 돼 있었다. 2026년에 받는 돈은 다음 달 관과 판을 만들 스테인리스와 강판을 사는 데 들어간다. 주주의 돈이 과거의 거래를 메우는 자리에서 오늘의 공장을 돌리는 자리로 내려왔다. 2024년에도 2026년에도 새 주식의 값은 결정 때 잡은 예정가보다 낮게 정해졌다. 주주가 내는 돈의 쓸 곳은 점점 하루치에 가까워지고, 주주가 매기는 값은 점점 낮아진다.

슈퍼데크가 롯데타워 현장에 판 것은 거푸집을 뜯어낼 필요가 없는 바닥이었다. 그 바닥을 사들인 이렘은 2년째 자기 아래에 받칠 거푸집을 주주의 돈으로 다시 짜고 있다.

관련 회사 이야기: 본업과 전혀 다른 사업이 몸통이 된 회사는 와이엔텍은 쓰레기 처리 회사인데 매출 60%를 화학 탱커선이 낸다에서 다뤘다. 주주에게 새 주식을 파는 구조는 유상증자 뜻에 정리돼 있다.

근거 자료: DART 공시 목록(이렘 권리락·유상증자 1차발행가액결정, 2026-10-08), 이렘 증권신고서(2024-04-19: 2023년 매출 구성, 슈퍼데크 양수 내역·코스틸 시절 실적, 총자산·차입금, 산업은행 190억원 상환), 코센 슈퍼데크 사업 양수 결정(2023-12-04), 코센 연혁·반도체 가스 배관·매출 추이(2023-12-11), 코스틸의 코센 최대주주 등극(2022-03-07), 롯데월드타워 슈퍼데크 적용(2016-03-21), 슈퍼데크 개발·음성공장, 2024년 1분기 실적·슈퍼데크 매출(2024-05-17), 248억원 유상증자 결정(2024-04-19), 확정 발행가 1,175원(2024-08-07), 2023·2024년 실적(2025-02-27), 2024·2025년 실적(2026-02-09), 차입금·이자비용·부문별 손익·결손금(2026-02-09), 에스와이스틸텍 증권신고서(2025-06-27: 데크 매출 추이), 무상감자·113억원 증자·주주 구성(2026-04-27), 1차 발행가·자금 용도 변경(2026-10-09).

이 글은 공개 자료에 근거한 사업 해석이며 투자 권유가 아니다. 수치는 본문에 적은 각 시점 기준이다. 2023년 영업이익은 코센 회사 전체, 슈퍼데크 영업이익은 코스틸 내 사업부문 기준이라 범위가 다르다. 2024~2025년 부문별 손익과 차입금 추이는 보도 집계를 따랐다. 182억원은 1,550만주에 확정 발행가를 곱한 최대치 계산이다. 이번 증자의 최종 발행가와 조달액은 11월 23일 이후 공시로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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