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벤처캐피털(VC)의 크립토 투자에 대한 접근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중동에서의 전쟁과 제재 우려가 원인으로, 시장의 '리스크 오프' 경향이 강해지는 가운데 VC 자금이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보다 '자산 보안'과 규제 준수, 유동성을 지원하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홍콩 소재 자산 운용사 해시키그룹(Hashkey Group)의 선임 리서처 팀 선(Tim Sun)은 최근 DL뉴스 인터뷰에서 "세계의 다극화가 진행됨에 따라 투자자들은 자산의 보안과 유동성, 안정성의 중요성을 다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정학적 갈등이 금융 제재 및 자본 통제의 가능성을 높이고, 그 결과로 VC의 투자 방침이 더욱 보수적으로 변경된다는 설명이다.
흥미롭게도, 위기 상황이 반드시 크립토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팀 선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스테이블코인의 결제 안정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제재나 자본 통제에 노출된 은행 송금망을 대신하여 '기본 결제 레이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지원하는 온·오프램프, 컴플라이언스 도구, 크로스체인 브리지 등 인프라가 리스크 오프 상황에서도 강한 방어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국제 미디어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와 코인데스크는 지정학적 긴장과 금융 제재 가능성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수요를 구조적으로 늘릴 것이라는 예측을 전하며, VC가 결제 전문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확대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EU의 가상자산 시장법(MiCA) 같은 글로벌 규제 표준화가 진행되면서, 규제가 약했던 과거의 성장 모델은 힘을 잃고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을 갖춘 인프라가 더욱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확대도 VC 관심이 인프라로 이동하는 배경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내년 스테이블코인의 이체 규모가 27조6000억 달러에 달해 비자 및 마스터카드의 합산 규모를 초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스테이블코인이 디파이(DeFi)와 실물 자산 토큰화, 크로스보더 결제의 중심 레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테더(USDT)와 USD코인(USDC)가 시장의 92%를 차지하는 과점 구조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펀딩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디파이라마(DefiLlama)의 집계에 따르면, 이번 주에만 크립토 스타트업이 총 1억9200만 달러를 조달했으며, 올해 누적 펀딩은 27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시장에서 '실사용'과 규제 대응이 가능한 분야로 자금이 재배치되는 과정을 반영한다.
런던의 핀테크 스타트업 카스트(Kast)가 시리즈 A 라운드에서 8000만 달러를 유치하며 주목받았다. 카스트는 스테이블코인을 애플페이와 같은 모바일 월렛과 연결하여 사용자가 크립토 잔고를 일상적인 결제 경험으로 전환하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크립토 회계 플랫폼 크립티오(Cryptio)는 4500만 달러를 조달하여 기업이 크립토 거래 내역을 감사하는 데 필요한 회계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다. 이러한 투자들은 규제 강화에 따른 컴플라이언스 도구의 수요 증가를 반영하고 있다.
지캐시 오픈 디벨롭먼트 랩은 2500만 달러를 유치하여 프라이버시 중심 네트워크의 확장을 위한 인프라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프로토콜 개발에 그치지 않고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정학적 충격이 반복됨에 따라 VC는 가격 변동성보다는 '자산 보안', 결제 안정성, 규제 준수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스테이블코인 인프라와 컴플라이언스 도구, 크로스체인 브리지 등 실사용 기반 분야가 다음 펀딩 사이클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을지에 대한 시장의 주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적 리스크 증가로 VC 자금, 스테이블코인 인프라에 집중

같은 코너에서 더 읽기
레저 하드웨어 지갑 도난, 공식 리셀러의 주인이 이미 바뀌어 있었다
레저(Ledger)는 동남아 공식 리셀러 CryptoBilis에 판매·배송 중단을 지시하고 최근 90일 구매자에게 기기를 켜지 말라고 권고했다. 연구자들은 손실을 7,200만~8,600만 달러 이상으로 본다. 이 사건의 핵심은 해킹 기법이 아니라, 공식 인증 간판은 그대로인데 그 뒤의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는 공급망의 빈틈이다.
코인셰어즈 부자 코인 설문, 조사를 낸 곳이 암호화폐 운용사다
코인셰어즈 설문에서 고액자산가 포트폴리오 내 암호화폐 비중은 평균 10%로 나왔다. 반면 자문가 단체 설립자 릭 에델먼은 실제로는 2~5%가 흔하다고 반박했다. 설문을 낸 곳이 암호화폐 운용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10%는 수요의 실측치라기보다 업계가 바라는 방향에 가깝고, 내 비중은 남의 평균이 아니라 내가 견딜 수 있는 손실 폭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판단이다.
민와일 비트코인 생명보험, 3,750만 달러 투자자 명단에 생명보험사가 있다
민와일(Meanwhile)은 보험료와 사망보험금을 모두 비트코인으로 정하는 버뮤다 생명보험사이고, 이번에 베인캐피털 크립토 주도로 3,750만 달러를 조달해 누적 1억8,000만 달러가 됐다. 투자자 명단에 Apollo와 노스웨스턴 뮤추얼의 벤처 자회사가 들어 있다는 점에서, 이 거래는 비트코인이 거래 자산에서 상속·보험 자산으로 옮겨 가는 실험에 전통 보험업 자본이 직접 걸었다는 신호다.
코인베이스 USDT 자동 전환, 10월 30일까지 안 빼면 USDC 등으로 바뀐다
ESMA가 MiCA 미준수 스테이블코인을 정리하라고 하면서 그동안 열려 있던 수탁·이체 통로까지 닫았다. 최종 시한은 2027년 1월 8일이지만 코인베이스는 USDT·PYUSD 잔액을 10월 30일까지 빼라고 했고, 남은 잔액은 USDC 등으로 자동 전환한다. 거래만 막히는 것이 아니라, 보유자가 스스로 옮기지 않으면 거래소가 대신 바꿔 버리는 구조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