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플랫폼인 베라 루빈(Vera Rubin)의 HBM4 공급망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초기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공급사로 예상되었으나, 마이크론의 참여도 공식 확인되면서 더욱 다변화된 공급 구조가 형성되었다.

엔비디아는 6월 1일 GTC 타이베이 키노트에서 베라 루빈 NVL72를 소개하며 이 세 회사를 HBM4 메모리 공급사로 공식 발표했다. 이 발표와 함께 베라 루빈 플랫폼이 본격적인 생산 단계에 들어간 사실도 함께 공개되었다. 베라 루빈은 블랙웰(Blackwell)의 후속 AI 인프라 플랫폼으로, 루빈 GPU는 HBM4 288GB와 22TB/s의 메모리 대역폭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HBM(High Bandwidth Memory)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크게 향상시키는 고대역폭 메모리 기술이다. AI 가속기가 동시 처리하는 데이터량이 증가함에 따라 메모리 용량, 대역폭 및 전력 효율성이 전체 시스템의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마이크론은 3월 16일 베라 루빈 전용 HBM4 36GB 12단 제품의 대량 생산을 발표했으며, 해당 제품은 11Gbps 이상의 핀 속도와 2.8TB/s 이상의 대역폭을 제공하면서 HBM3E 제품보다 전력 효율이 20% 이상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마이크론은 6월 24일 실적 발표에서 HBM4 메모리를 주요 고객사에 대량 출하하고 있으며, 여러 고객사에 인증 샘플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마이크론의 공급 참여는 신규 시장 진입보다는 기존 공급망 내에서의 입지를 재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론이 각각 플랫폼 공급사와 제품 양산 사실을 밝히면서 이들 세 회사 간의 경쟁 구조가 공식화되고 있다.

한국 내 반도체 업계 역시 이번 공급망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함께 공급사로 이름을 올리면서 이들 세 회사는 베라 루빈용 HBM4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는 6월 7일 다년간 메모리 기술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베라 루빈과 베라 CPU 등 차세대 AI 인프라에 사용될 메모리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이제 경쟁의 초점은 단순한 공급사 등록을 넘어서 양산 능력, 제품 성능, 고객 인증으로 이동하고 있다. HBM은 고객의 가속기 설계에 맞춰 검증을 거쳐야 하므로, 공급사로 거론되더라도 실제 출하 규모는 제품별로 상이할 수 있다.

초기 시장 관측은 엔비디아의 공식 발표와는 다소 간극이 있었다. 2월에는 일부 보도가 마이크론의 베라 루빈 용 HBM4 비중을 0%로 추정했으며, 3월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심의 공급 구도가 예상됐다.

수요에 대한 측면에서도 장기 공급계약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마이크론의 고객들이 메모리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5년짜리 테이크 오어 페이 계약을 통해 220억 달러(약 31조200억 원)를 약정했다. 이 계약 방식은 고객이 계약 물량을 인수하지 않더라도 정해진 대금을 지급하게 하여 공급사가 장기 수요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고객은 공급 부족 시 필요한 물량을 미리 확보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마이크론은 이 보도 속에서 메모리 공급 부족이 적어도 2027년까지 지속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엔비디아와 세 공급사는 공급 비중, 가격, 우선 배정 물량 등의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진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본지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HBM4E 및 HBM4 공급 상황을 다루며 AI 메모리 사양 변화가 HBM 수요에 미칠 영향을 논의한 바가 있다. 마이크론은 HBM4E의 양산 시점을 2027년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여러 최종 고객사에 인증 샘플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