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느 최대주주 변경 공시. 공장 없이 미국 세포라·박시참에 화장품을 대던 회사가 248억원에 세제 회사를 사고 79억원 손상과 주력 계약 종료를 겪기까지
본느 최대주주 변경, 공장 없는 화장품 회사가 248억에 세제 회사를 샀다

본느(226340) 주가는 10월 13일 5,580원으로 12.95% 내렸고, 장중 거래량은 29만7천여 주였습니다. 하루 전인 10월 12일 회사는 최대주주변경을 공시했습니다.
새 최대주주 자리에는 구미현 전 아워홈 회장이 섭니다. 그가 넘겨받는 회사는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인데, 정작 화장품 공장이 한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2021년에는 248억원을 들여 친환경 세제와 치약을 파는 회사를 샀습니다.
본느의 17년은 한 곳에 묶이지 않으려고 길을 넓힌 역사입니다. 그런데 길을 넓힐 때마다 회사는 다시 한 시장, 한 계약에 묶였습니다. 새 주인이 받는 것은 그 결과물입니다.
새 주인이 받는 회사는 공장이 없습니다
본느는 2009년 3월 임성기 대표가 세웠습니다. 하는 일은 화장품 ODM입니다. 다른 회사가 "이런 제품을 우리 이름으로 팔고 싶다"고 주문하면, 제품을 기획하고 처방을 개발해 완성품으로 넘겨줍니다.
국내 화장품 ODM 상위권인 코스맥스·한국콜마·코스메카코리아는 모두 자기 공장을 돌립니다. 본느는 다릅니다. 연구개발과 상품 기획까지만 맡고, 실제 생산은 외부 제조사에 맡깁니다.
설비가 없으니 고정비가 가볍습니다. 고객사는 신제품을 여러 종류로 조금씩 맡길 수 있고, 회사는 유행이 바뀌면 빨리 방향을 틉니다. 2020년 증권사 리포트도 이 구조를 본느의 강점으로 설명했습니다.
제품군은 스킨케어·메이크업·바디케어·헤어케어·염색제품·네일케어까지 넓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내놓은 제품이 2,000여 종이었습니다. 고객을 오래 붙잡아 두는 장기계약이나 인증 같은 장치는 회사가 공개한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가벼운 만큼, 떠나는 고객을 막을 벽도 낮은 회사입니다.
그 가벼움으로 미국 매장 진열대까지 먼저 갔습니다
본느의 고객 목록은 소형 업체치고 화려합니다. 아시아에서는 왓슨스·매닝스·가디언, 북미에서는 세포라·스틸라에 물건을 댔습니다. 2018년 기사에는 로레알그룹 '키엘'에 마스크팩을 공급한 기록이 있고, 2019년 리포트에는 마크제이콥스·펜티·트리니티가 거래처로 나옵니다.
회사는 남의 이름으로만 팔지 않았습니다. 2012년 자체 색조 브랜드 '터치인솔'을 내놓았고, 2013년부터 브랜드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웠습니다.
터치인솔은 2015년 10월 세포라 USA의 '페이버릿존'에 마스카라·아이브로우 등 4개 품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국내 색조 브랜드로는 처음이었습니다. 마스카라는 세포라 '수퍼스타 키트'에 뽑힌 유일한 한국 브랜드였습니다.
2018년에는 터치인솔 '노 포어블럼 프라이머'가 아마존 프라이머 부문 9~11위에 올랐습니다. 미국 세포라 약 400개 매장, 일본 드럭스토어 약 2,000개 매장에 이 제품이 진열됐습니다. 중국에서는 차이나세포라와 함께 만든 브랜드 '스테이지Q'가 81개 매장에 들어갔고, 250개로 늘릴 계획이었습니다.

가장 큰 장면은 상자 안에 있었습니다. 2019년 터치인솔은 북미 최대 구독 화장품 서비스 '박시참'의 2·6·10월 박스에 선정됐습니다. 국내 업체가 박시참에 납품한 것은 본느가 처음이었습니다.
구독자는 매달 화장품이 담긴 상자를 받고, 상자를 여는 영상을 올립니다. 그 영상이 입소문이 됩니다. 물량도 컸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구독자수가 많아 한번 물량이 나갈 때 100만개 정도 나간다"고 말했습니다. 입시·센트버드 같은 미국 상위 5위권 구독 업체에도 물건이 들어갔습니다.
상자 한 번이 100만 개입니다. 공장 없이 기획만 하는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판로 중에 이보다 효율 좋은 것은 드뭅니다. 그리고 이런 판로는 대부분 미국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출은 북미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2016년 코넥스에 먼저 상장한 본느는 2018년 10월 26일 에이치엠씨제3호스팩과 합병해 코스닥으로 옮겼습니다. 그해 상반기 기록을 보면 매출의 약 80%가 수출이었습니다. 지역별로는 북미 36%, 중국을 뺀 아시아 19%, 유럽 등 기타 25%였습니다. 27개국 약 4,000개 매장에 물건이 깔렸습니다.
당시 회사가 그린 그림은 균형이었습니다. ODM은 꾸준히 돈을 대는 사업, 브랜드는 키워 갈 사업으로 나눴습니다. 브랜드 매출 비중은 2015년 18%에서 2018년 상반기 41%까지 올라왔습니다.
이현진 경영기획팀장은 상장을 앞두고 "2020년까지 ODM에서 500억, 브랜드로 500억의 매출을 올리며"라고 목표를 밝혔습니다. 남의 주문과 내 브랜드를 반반씩, 합쳐 1,000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실제 흐름은 다른 쪽으로 갔습니다. 2021년 6월 현대차증권은 본느의 ODM 수출에서 북미가 약 50%, 유럽이 약 20%라고 봤습니다. 2024년 초 나온 증권사 리포트들은 2023년 미국 매출 비중을 75%로 적었습니다.
세 숫자는 잰 기준이 다릅니다. 2018년은 전체 매출 중 북미, 2021년은 ODM 수출 안에서 북미, 2023년은 미국 비중입니다. 그래도 방향은 하나입니다. 브랜드로 무게를 나누려던 회사의 매출이 시간이 갈수록 미국으로 모였습니다.
공장 없는 구조는 미국 대형 유통사와 인디 브랜드의 빠른 주문을 받기에 맞았습니다. 그 강점이 그대로 쏠림이 됐습니다.
화장품 밖으로 나간 첫 발은 세제였습니다
2021년 2월 4일 본느는 생활용품 회사 아토세이프의 지분 68.9%를 248억원에 사들여 자회사로 들였습니다. 아토세이프는 친환경 세제 '쉬슬러'와 기능성 치약 '덴티 본조르노'를 온라인과 홈쇼핑으로 파는 회사입니다.
이 거래에는 TS인베스트먼트와 나우IB캐피탈이 각각 5.5%씩 재무적 투자자로 들어왔습니다. 같은 시기 본느는 광고·유통 업체 큐브릭코퍼레이션도 인수했습니다. 물건을 만드는 회사 하나, 물건을 알리고 파는 회사 하나를 함께 들인 것입니다.
임성기 대표는 당시 "이번 아토세이프 인수를 시작으로 사업 영역을 더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화장품 밖으로, 해외 밖으로 넓히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인수는 본느가 꺼낸 두 번째 분산 카드였습니다. 첫 번째 카드인 자체 브랜드가 미국 매출을 나눠 주지 못하자, 이번에는 국내 생활용품이라는 전혀 다른 바구니를 산 것입니다. 248억원은 당시 이 회사가 한 해 버는 영업이익보다 훨씬 큰 돈이었습니다.
2025년, 두 갈래가 한꺼번에 꺾였습니다
2025년 본느는 친환경 세제 자회사와 마케팅 자회사의 부진을 이유로 영업권 등 무형자산 손상차손 79억원을 장부에 반영했습니다. 인수할 때 "이 회사는 앞으로 이만큼 벌 것"이라며 얹어 준 값이 있는데, 그 기대가 맞지 않았으니 79억원어치를 깎아 낸 것입니다.
같은 해 주력인 화장품 ODM 부문에서는 주요 제품의 공급 계약이 끝났습니다. 회사는 반기보고서에서 계약이 끝난 사실은 밝혔지만, 상대가 누구인지와 언제 끝났는지는 적지 않았습니다.

숫자가 그 무게를 보여 줍니다. 최근 세 개 연도 매출은 729억원, 687억원, 460억원으로 내려왔습니다. 영업이익은 67억원에서 17억원으로 줄었다가 가장 최근 해에는 83억원 영업손실이 났습니다. 당기순손실은 159억원까지 커졌습니다.
매출 700억원대 회사에서 한 해에 200억원 넘게 빠졌습니다. 주력 계약 하나가 끝난 해와 매출이 꺾인 해가 겹칩니다. 공장이 없어 고객을 빨리 늘릴 수 있었던 회사는, 같은 이유로 고객이 빠질 때 붙잡을 장치도 가볍었습니다.
부채비율은 120%에서 56%대로 내려와 있습니다. 빚에 짓눌린 회사는 아닙니다. 문제는 돈을 버는 바구니가 줄었다는 데 있습니다. 미국 ODM과 국내 세제, 두 바구니가 같은 해에 함께 가벼워졌습니다.
멈춰 둔 신사업 목록이 새 최대주주 책상에 올라갑니다
올해 반기보고서에는 본느가 손대려다 멈춘 일들이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펫용품, 건강식품 수출입, 농산물 수출입입니다. 회사는 셋 모두를 잠정 보류로 분류했고, 향후 1년 안에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썼습니다.
멈춘 이유도 각각 적었습니다. 펫용품은 상표권 등록까지 마쳤지만 시장 분석이 부족했습니다. 건강식품은 시장 분석과 예산이 문제였습니다. 농산물은 관계사의 땅콩잼 사업에 쓸 원료를 직접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인력과 예산에서 막혔습니다.
세 사업 모두 화장품이 아닙니다. 세제 회사 인수에서 시작된 '화장품 밖으로'라는 방향이 2026년까지 이어졌고, 그 방향을 실제로 끌고 갈 사람과 돈이 모자랐다는 기록입니다.
새 최대주주 구미현 전 회장은 식품·급식 회사 아워홈을 이끌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이 목록을 다시 펼칠지, 화장품 ODM으로 돌아가 빠진 매출을 메울지는 아직 회사가 내놓은 계획이 없습니다.
최대주주 변경이 실제 일감으로 이어지려면
본느 전망을 묻는 사람이 확인할 숫자는 분명합니다. 첫째, 2025년 끝난 주요 ODM 계약의 빈자리를 새 고객이 얼마나 채우는지입니다. 매출이 460억원에서 다시 올라오는지는 다음 분기보고서와 2026년 사업보고서의 ODM 매출에서 드러납니다.
둘째, 보류로 적어 둔 펫·건강식품·농산물 사업이 새 경영진 아래에서 '추진'으로 바뀌는지입니다. 반기보고서가 "1년 안에 계획 없음"이라고 쓴 칸이 다음 보고서에서 달라지면, 최대주주 변경이 사업 방향까지 바꾼 것입니다.
셋째, 이미 79억원을 깎아 낸 세제·마케팅 자회사를 그대로 끌고 갈지입니다. 248억원으로 시작한 화장품 밖 실험의 남은 장부가 새 주인 손에서 정리되는지, 다시 키워지는지가 이 회사의 다음 바구니를 정합니다.
공장 없이 미국 진열대까지 가장 빨리 갔던 회사가 지금 새 주인에게 건네는 것은 공장도, 큰 고객도 아닌, 다시 채워야 할 매출 200억원과 멈춘 사업 목록 세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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