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가 경제 생태계의 중요한 주체로 자리 잡게 된다면 우리의 화폐 선택 기준도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실비아 토 불리시 캐피털 매니지먼트 부사장은 AI가 화폐를 선택할 때 정치적 요소나 브랜드가 아닌 예측 가능한 규칙, 그리고 검열 저항성과 같은 인프라적 특성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통해 기존의 화폐 구조가 탈국가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암호화폐의 철학적 배경은 사이퍼펑크(cypherpunk)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탈중앙화, 검열 저항성을 강조한다.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는 2026년 소유자가 없는 공유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 권력이 이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은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화폐의 탈국가화(Denationalisation of Money)'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이에크는 화폐가 국가의 법정통화가 아니라 시장 경쟁을 통해 선택된 상품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좋은 화폐'에 대한 조건으로 비국가적 통화, 규칙 기반의 통화 정책, 전 세계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 중앙 발행자가 없는 시스템 등을 제시했다. 비트코인은 이러한 조건을 최초로 현실에서 충족할 가능성이 있는 통화 네트워크로 평가받고 있다.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있지만 명확한 통화 발행 규칙을 따르며, 중앙집중적인 기관이나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AI에게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반면, 현재 가장 성공적인 암호화폐 사용 사례로 꼽히는 스테이블코인은 다른 성격을 지닌다. 스테이블코인은 빠르고 프로그래머블한 특성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미국 달러와 연계되어 있어 기존 국가 화폐의 디지털 확장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화 화폐와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있다.
AI 에이전트 경제가 등장하면서 이 논의는 더욱 흥미로워졌다. 기계는 감정적이거나 정치적인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에, 거래 메타데이터나 즉시 실행되는 결제 확정성과 같은 요소를 선호할 것이다. MCP(Model Context Protocol)와 같은 프레임워크를 통해 AI 에이전트 간의 상호작용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AI가 선호하는 화폐 기준도 변화할 수 있다. AI는 발행자의 정책 리스크나 검열 위험을 평가한 후,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화폐를 선택하게 된다.
AI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인간이 정치적 및 감정적 요소에 얽혀 최적의 화폐를 선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적이나 정치적 이념에 무관심한 AI 에이전트는 새로운 화폐 네트워크의 신뢰성과 효율성에 기반하여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화폐의 탈국가화를 철학적 혁명이 아닌 기술적 필연으로 이끌 수 있으며, 기계 경제의 효율성이 새로운 화폐 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AI가 선호하는 화폐는 무엇일까…하이에크의 이론과 사토시의 설계가 만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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