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피더스는 2027년도 하반기 2나노 양산을 앞두고, 설계 인력이 모자라 주문을 못 내는 일본 잠재 고객의 설계를 17개 협력사가 대신 맡게 했다. 공장보다 고객이 먼저 문제라는 자기 진단이다. 같은 해 일본 정부가 1500억엔을 더 넣어 지분 2500억엔과 거부권(황금주)을 쥔 사실을 겹쳐 보면, 이번 동맹은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고객 만들기 작전이다.
라피더스 2나노 칩 설계, 일본 고객 대신 17개 협력사가 맡는다

라피더스 2나노, 17개 협력사가 주문을 만드는 구조
- 라피더스는 일본 고객의 설계 인력 부족을 17개 협력사로 메워 2나노 주문을 만들려 한다.
- 일본 정부는 2026년 6월 지분을 2500억엔으로 늘리고 황금주를 확보해 경영에 직접 관여하게 됐다.
- 엘피다 파산의 교훈은 묶는 것보다 통제 구조가 성패를 가른다는 것이다.
라피더스는 왜 공장이 아니라 남의 설계부터 챙기나
파운드리 공장은 주문서가 아니라 설계 도면으로 돌아간다. 고객이 회로를 그려 넘겨야 라피더스(Rapidus)가 그 도면대로 칩을 찍는다.
문제는 2나노 같은 최첨단 칩일수록 도면 그리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라피더스의 잠재 고객인 일본 기업들은 이 설계 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칩을 맡기고 싶어도 맡길 도면을 못 만드는 셈이다.
그래서 라피더스는 순서를 바꿨다. 고객이 도면을 들고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17개 협력사가 고객 대신 설계를 해 주고 그 물량을 라피더스가 생산한다.
공장보다 고객이 더 급하다는 자기 고백이다.

도시바·시놉시스·케이던스, 17개사는 각자 무엇을 얻나
이름이 확인된 곳은 도시바, 다이닛폰 인쇄, 미국 설계 소프트웨어 회사 시놉시스(Synopsys, SNPS)와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스(Cadence, CDNS), 인도 인포시스(Infosys), 그리고 말레이시아 기업이다. 나머지 협력사 이름과 역할 분담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발표에는 거래액도, 지분 교환도 없다. 돈이 오가는 계약이 아니라 설계 업무를 나누는 협력 체계다.
협력사 쪽 계산은 단순하다. 라피더스 고객이 늘면 설계 용역과 설계 도구 수요가 따라 붙는다. 시놉시스와 케이던스 주주에게는 새 2나노 공장 하나가 자사 도구를 쓰는 고객 창구를 하나 더 만든다는 정도의 의미다. 실적을 바꿀 규모인지는 금액이 나오기 전까지 판단할 근거가 없다.

3조엔 지원 위에 정부가 황금주까지 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경제산업성이 라피더스에 지금까지 결정한 지원은 3조엔이다. 원화로 25조5천억원 규모다.
더 눈여겨볼 변화는 올해 상반기에 있었다. 2026년 2월 일본은 정부가 라피더스에 직접 지분을 넣을 수 있는 법을 처음 만들었다. 6월에는 1500억엔을 추가로 넣어 정부 지분을 2500억엔으로 늘렸다.
이때 정부는 경영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황금주도 받아 갔다. 일본 정부는 연구개발 보조금을 지원하다가 경영에 참여하는 주주가 됐다.
우리는 이 전환을 돈만 대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판단으로 본다. 10월의 설계 동맹은 바로 그 통제 체제 아래 나온 첫 고객 전략이다.

엘피다메모리 4480억엔 파산, 여러 회사를 묶은 동맹은 전에 어떻게 됐나
엘피다메모리는 1999년 NEC와 히타치의 반도체 사업을 합쳐 일본 반도체 재건을 내걸고 출범했다. 공적자금까지 받았지만 2012년 2월 27일 회사갱생법을 신청했다.
당시 부채는 4480억엔.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 도산이었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여러 회사를 묶는 국책 반도체 프로젝트를 여러 번 했고, 경제산업성 스스로 성공한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 사이 일본 반도체의 세계 점유율은 1980년대 후반 약 50%에서 지금 10%대로 내려왔다.
반례도 있다. 역시 여러 회사를 합친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감독과 집행을 나눈 지배구조로 살아났다. 묶었느냐보다 누가 어떻게 통제했느냐가 결과를 갈랐다는 것이 일본이 얻은 교훈이다.

이번 동맹이 엘피다와 다른 점은 어디에 있나
엘피다는 만드는 회사끼리 합친 연합이었다. 이번 동맹은 사는 쪽, 즉 고객의 설계 공백을 메우려고 짠 연합이다.
겨냥한 병목이 다르다. 생산 능력을 아무리 키워도 도면이 없으면 공장은 빈다. 라피더스가 이번에 손댄 곳은 바로 그 입구다.
게다가 이번엔 정부가 지분과 거부권으로 경영 결정 자체를 들여다볼 수 있다. 르네사스가 보여 준 통제의 교훈을 제도로 옮긴 모양새다.
남은 시험은 하나다. 설계 지원으로 끌어온 고객이 실제 2나노 주문으로 바뀌느냐다.
2나노 양산 2027년, 삼성 파운드리와 투자자가 볼 지점
라피더스의 2나노 생산 목표는 2027년도 하반기다. 총투자 7조엔을 계획하고 2030회계연도 흑자 전환, 2031회계연도 기업공개를 내걸었다.
양산이 궤도에 오르면 삼성 파운드리가 상대할 최첨단 공급자가 하나 늘어난다. 그 경쟁은 공정 기술만이 아니라 설계 지원까지 묶어 고객을 붙잡는 싸움이 된다.
우리가 보는 결론은 이렇다. 라피더스는 칩을 만들기 전에 고객부터 만들고 있고, 그 비용과 위험의 대부분은 지분을 쥔 일본 정부, 곧 일본 납세자가 진다. 동맹의 성적표는 17개라는 숫자가 아니라 2027년에 실제로 들어온 도면의 수로 매겨진다.
이 글은 라피더스 설계 동맹의 구조를 설명한 것으로 시놉시스·케이던스·삼성전자 등 관련 종목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2나노 양산 일정과 고객 확보는 계획 단계라 빗나갈 수 있으며, 엔화 환율 변동도 해외 투자 손익에 영향을 줍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독자에게 있습니다.
같은 코너에서 더 읽기
한투 사모신용 합작법인 3000억원, KDB생명 돈 굴릴 곳 만든다
한국투자금융그룹(한투)이 미국 사모펀드 운용사 C사의 크레디트 사업부를 분리해 만드는 합작법인 지분을 50 대 50으로 나누고, 약 3000억원을 넣는 방안을 협상하고 있다. 신설 법인의 가치는 약 6000억원이다. 이 거래는 KDB생명 인수와 짝을 이룰 때 의미가 커진다. 보험사가 모은 장기 자금을 미국 기업 대출에 직접 굴릴 창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1위 탈환, 지분 없는 미국 본사가 이익 93%를 가져간다
스타벅스는 9월 신용·체크카드 추정 결제액 1천210억8천만원으로 투썸플레이스(1천105억원)를 약 106억원 앞서며 5개월 만에 커피 브랜드 1위를 되찾았다. 회복을 이끈 것은 7월부터 재개한 신제품과 고객 혜택이었다. 그런데 이 결제액이 만든 이익의 대부분은 지분이 하나도 없는 미국 본사로 로열티로 빠져나가고, 사태의 비용은 지분을 가진 신세계가 떠안았다.
앤트로픽 ETF, 넣은 돈의 약 45%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으로 간다
앤트로픽 상장 후 편입을 내건 에이전틱 AI ETF는 상장 전인 지금도 앤트로픽 대주주인 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을 크게 담고 있다. 실제 편입은 HANARO는 지수위원회 심사, KODEX는 운용역 재량으로 갈리며 시점과 비중은 정해지지 않았다.
유안타증권이 꼽은 AI 수혜 ETF, 인텔은 리포트보다 다섯 달 먼저 들어와 있었다
유안타증권은 에이전틱 AI가 CPU의 역할을 키운다며 SOXX와 KODEX 미국AI반도체TOP3플러스를 수혜 ETF로 꼽았다. KODEX의 CPU 비중 34.2%는 인텔 21.9%, AMD 10.1%, ARM 2.2%를 더한 값이고, 인텔 편입은 리포트보다 다섯 달 앞선 리밸런싱에서 이미 이뤄졌다. 이 ETF를 산다는 것은 새 유행을 잡는 일이 아니라 운용사가 먼저 걸어 둔 인텔 베팅에 올라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