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는 맥주 이름이 앞에 있지만, 2025년 영업이익 97%는 소주가 냈다


식당 테이블에 테라 한 병과 참이슬 한 병이 나란히 올라오면, 두 병은 같은 회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이트진로(000080)입니다. 회사 이름 맨 앞에 맥주 상표 「하이트」가 서 있고, 2019년 테라와 2023년 켈리처럼 맥주 신제품으로 이름이 자주 오르니 맥주 회사로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올가을 이 회사가 내린 공장 결정은 무게가 어느 쪽에 실려 있는지 보여 줍니다. 하이트진로는 1957년 보배소주 공장으로 지어진 전북 익산 공장의 가동을 2026년 10월 16일 멈추고, 그 물량을 전주 공장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 중단 여부는 제공된 보도로 확인되지 않으며, 일정은 행정절차 등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전주는 맥주를 만들던 곳입니다. 계획대로 이전하면 전주 공장은 하이트진로에서 소주와 맥주를 함께 만드는 첫 공장이 됩니다.
장부를 열면 그 무게가 숫자로 나옵니다. 2025년 하이트진로의 연결 영업이익 1,723억원 가운데 1,672억원이 소주 부문에서 나왔습니다. 영업이익 100원 가운데 97원을 소주가 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맥주 이름을 앞에 단 소주 회사이고, 맥주는 그 소주 회사가 무거운 공장과 상표를 짊어진 채 끌고 가는 사업입니다.
회사 생일은 하이트가 아니라 진로의 것
하이트진로가 사업보고서에 적는 설립 시점은 1924년 10월입니다. 평안남도 용강에서 진천양조상회가 문을 연 때로, 소주 진로의 뿌리입니다. 이 회사가 스스로 꼽는 생일은 맥주가 아니라 소주의 생일입니다.
순서를 따라가면 이렇습니다. 진로는 회사정리절차를 밟던 2005년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에 매각됐습니다. 사들인 쪽은 맥주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2011년 9월 두 회사가 하나가 될 때 남은 법인은 진로였습니다. 진로가 하이트맥주를 흡수합병했고, 그 자리에서 상호를 하이트진로로 바꿨습니다. 2012년 하이스코트, 2013년 보배도 같은 법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지금 이 법인의 최대주주는 보통주 50.86%(2024년 말)를 가진 하이트진로홀딩스입니다. 맥주 회사가 사들인 소주 회사의 몸이 맥주와 소주를 함께 담는 그릇이 됐고, 그 그릇의 바닥에는 지금도 진로의 날짜가 적혀 있습니다.
이익은 거의 소주 혼자 낸다
세 해를 이어 보면 흐름이 분명합니다. 2023년 소주 부문은 1,23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맥주 부문은 77억원 영업손실이었습니다. 2024년에는 소주 1,777억원, 맥주 343억원으로 맥주가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2025년 소주는 1,672억원으로 5.9% 줄었고, 맥주는 86억원으로 75% 줄었습니다. 세 해 내내 회사 이익의 바닥을 받친 것은 소주였습니다.
매출 크기를 맞춰 놓고 봐도 차이가 큽니다. 2024년 소주 부문은 외부 매출 1조5,481억원에서 영업이익 1,777억원을, 맥주 부문은 8,236억원에서 343억원을 남겼습니다. 100원어치를 팔아 소주는 11.5원, 맥주는 4.2원을 남겼습니다. 2025년 맥주 매출은 7,581억원으로 7.9% 줄었고, 100원당 남긴 돈은 1.1원이 됐습니다.
가격표는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2025년 테라·켈리·하이트의 내수 출고가는 한 상자 기준 2만7,195원에서 2만7,983원으로 2.9% 올랐고, 참이슬 내수 출고가는 3년째 3만3,450원 그대로였습니다. 값을 올린 쪽도 맥주였고, 이익이 줄어든 쪽도 맥주였습니다. 2026년 1분기에는 소주가 522억원을 버는 동안 맥주가 22억원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맥주는 공장과 상표가 무겁다
맥주 쪽 장부에는 소주 쪽보다 무거운 짐이 적혀 있습니다. 하나는 설비입니다. 공장과 상표의 값을 해마다 나눠 비용으로 잡는 감가상각비가 2024년 맥주 부문에 665억원 배분됐습니다. 매출이 두 배 가까운 소주 부문의 777억원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100원어치를 팔 때 맥주는 8.1원, 소주는 5.0원이 감가상각비로 빠져나갑니다. 2025년에는 맥주 감가상각비 625억원이 회사 전체 1,475억원의 42%였는데, 같은 해 맥주 매출은 연결 매출 2조4,986억원의 30% 남짓이었습니다.
그 설비가 다 돌지도 않습니다. 2024년 강원 홍천과 전주(완주)의 맥주 공장 두 곳은 생산능력 80만7,320㎘ 가운데 51만4,444㎘를 만들어 가동률이 63.7%였습니다. 같은 해 소주 공장 네 곳의 가동률은 77.0%였습니다. 맥주 공장은 능력의 3분의 1 넘게 비어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상표입니다. 하이트진로는 맥주사업부 산업재산권의 장부값이 앞으로 거둘 수 있는 돈보다 크다고 보고 2024년 194억원을 손상차손으로 덜어 냈습니다. 그해에는 손대지 않았던 맥주 영업권도 2025년에는 97억원을 깎았고, 산업재산권 563억원과 합쳐 모두 660억원을 덜어 냈습니다. 회사 스스로 맥주 쪽 권리의 값을 1년 사이 세 배 넘는 규모로 깎아 내린 것입니다.
맥주 공장이 처음으로 소주를 만든다
이 장부를 펴 놓고 익산 공장 결정을 다시 보면 방향이 잡힙니다. 익산은 2024년 생산능력 4만4,445㎘의 작은 소주 공장이었고, 2026년 상반기 회사 소주 생산의 4.0%를 맡았습니다. 2025년 이 공장에서 만든 제품 매출은 약 420억원으로 연결 매출의 1.68%였습니다. 회사가 밝힌 이유는 설비 노후화와 운영 여건, 주변 주민의 소음 민원입니다.
그 물량과 인력이 옮겨 갈 예정인 곳이 2024년 생산능력 39만820㎘에 가동률 67.0%였던 전주 맥주 공장입니다. 이전이 끝나면 생산 거점은 이천·강원·청주·전주·마산 다섯 곳으로 줄어듭니다. 이전 후에는 소주를 만드는 곳이 이천·청주·마산·전주 넷, 맥주를 만드는 곳이 강원·전주 둘이 될 예정입니다. 계획대로라면 맥주 공장 두 곳 가운데 한 곳이 소주 공장을 겸하게 됩니다.
소주는 국내 생산 거점을 줄이는 계획과 함께 바다 밖에서도 생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소주 법인 JINRO SOJU VIETNAM은 공시상 자본금이 7,700만달러이고, 2026년 11월 시운전을 거쳐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합니다. 사업보고서도 미국·일본·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소주의 세계화를 회사의 방향으로 적어 두었습니다. 해외 양산을 목표로 하는 쪽도, 맥주 공장으로 물량을 옮기려는 쪽도 소주입니다.
다시 식당 테이블로 돌아가 보면, 테라와 참이슬은 같은 회사 이름을 달고 있어도 같은 무게로 회사를 받치지 않습니다. 2025년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거의 다 소주 쪽에서 나왔고, 맥주 쪽은 8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습니다.
간판에는 하이트가 앞에 서 있습니다. 설립일도, 이익도, 새 공장도 진로 쪽에 서 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이름의 순서와 무게의 순서가 거꾸로 된 회사입니다.
작성 기준: 하이트진로 2024년 사업보고서(2025년 3월 13일 공시, 연혁·부문 매출·부문 영업이익·감가상각비·손상차손·공장 가동률), 2025년 사업보고서를 인용한 블로터 보도(2026년 3월 20일, 2025년 부문 영업이익·출고가·손상차손·감가상각비), 익산 공장 생산 종료와 전주 이전 보도(SBS Biz 2026년 9월 9일, 시사경제 2026년 9월 26일), 2026년 1분기 실적 보도(이데일리 2026년 5월 15일)(2026년 11월 7일 확인). 매출·영업이익은 연결 부문 기준입니다. 100원당 영업이익(11.5원·4.2원·1.1원)과 100원당 감가상각비(8.1원·5.0원), 맥주 매출 비중(30% 남짓), 맥주 공장 유휴 비율(3분의 1 넘게)은 공시·보도 수치로 계산한 값입니다. 익산 공장 가동 중단일은 회사가 밝힌 예정일이며 행정절차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하는 글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