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토 상한가 이유, 이용자가 고친 번역 문장을 구글·메타에 파는 회사

플리토(300080)는 번역 앱으로 알려졌지만 6월 말 수주잔고 287억원 중 283억원이 AI 학습 데이터 계약입니다. 번역 이용자와 보글 통역이 데이터 입구가 되는 사업을 풀었습니다.

플리토(300080) 주가가 10월 20일 상한가(+29.99%)를 기록했습니다. 이날 거래량은 128만5229주로, 직전 20거래일 평균 약 4만5000주의 28배였습니다.
같은 날 회사는 3분기 잠정 매출 177억8600만원, 영업이익 89억7200만원을 내놨습니다. 둘 다 분기 기준 최대입니다. 미국 뉴욕의 한인 창업 행사 '꿈 위크 2026'에 AI 통번역 서비스 '보글'을 공급했다는 소식도 이날 나왔습니다.
플리토 하면 대부분 번역 앱을 떠올립니다. 173개국에서 43개 언어를 지원하고 누적 사용자가 1,400만 명(2025년 8월 기준)인 앱이니 그럴 만합니다. 그런데 올해 6월 말 이 회사가 받아 둔 일감 287억4200만원 가운데 283억1500만원은 번역이 아니라 데이터 판매 계약이었습니다.
플리토는 번역을 파는 회사가 아닙니다. 사람이 번역하고 서로 고쳐 준 문장을 모아 AI 회사에 파는 회사이고, 번역 앱과 행사장 통역은 그 문장이 들어오는 입구입니다. 플리토가 뭐하는 회사냐는 질문의 답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번역을 맡겨도 회사가 떼는 돈은 결제 수수료 정도였습니다
플리토 앱에 번역을 올리면 3분 안에 여러 사람의 답이 달립니다. 이용자들이 서로의 번역을 평가하고, 평가가 쌓이면 등급이 매겨집니다. 2020년 기준 번역가로 등록한 이용자는 약 1,300만 명,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은 약 100만 명이었습니다.
이 중 매달 돈을 받아 가는 이용자가 약 10만 명이었고, 가장 많이 번 사람은 한 달에 2000만원 가까이 받았습니다. '플리토 번역 알바', '플리토 부업'이 검색창에 따라붙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끼리 번역을 주고받을 때 회사가 챙긴 몫은 결제 수수료와 부가세 수준이 전부였습니다. 번역 중개로는 남는 게 거의 없게 짜 놓은 것입니다.
돈은 그다음에 생깁니다. 회사는 올라온 번역 문장을 분류해 저장하고, 어떤 언어인지·어떤 분야인지 같은 꼬리표를 붙여 다듬은 데이터로 쌓습니다. 2020년 기준 이렇게 만든 데이터는 한 개에 500~1000원에 팔렸습니다. 회사는 검수를 거친 데이터의 정확도가 약 99%라고 밝혀 왔습니다.
매출 구성이 이 순서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2025년 1~3분기 누적으로 데이터 판매가 76.0%였고, 그중 67.2%가 해외로 나간 몫이었습니다. 번역 플랫폼은 15.8%, 통번역 솔루션은 7.5%였습니다. 이용자가 앱에 올리는 번역 요청 한 건 한 건이 이 회사가 팔 물건의 원재료입니다.

그 문장을 사는 쪽은 인터넷을 이미 다 읽은 AI입니다
누가 사람이 고친 문장에 돈을 낼까요. 이정수 대표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지금의 AI 모델들은 이미 공개된 데이터를 대부분 학습했다." 그렇다고 AI가 만든 문장으로 다시 학습시키는 것도 답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100% 자동화된 데이터만 반복 학습하면 오히려 모델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사람이 새로 만들고 검수한 문장, 그중에서도 영어가 아닌 언어입니다. 플리토는 한국어·영어·일본어에 더해 동남아와 중동 언어에 힘을 줍니다. 아랍어도 사우디·이집트·모로코·알제리처럼 지역별 방언을 따로 모읍니다.
사는 곳은 AI 모델을 만드는 회사들입니다. 2026년 1월 보도 기준 구글·메타·AWS 같은 글로벌 빅테크가 고객이고, 공시에서는 '미국 소재 IT기업 A사', '국내 소재 IT기업 B사'로만 적힙니다. 구글은 데이터만 사 가는 게 아니라 자사 글로벌 컨퍼런스의 실시간 통번역에도 플리토를 썼습니다.
국내 공공 쪽 일감도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말뭉치 구축은 2025년 기준 5년째 맡고 있고, 2026년에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데이터 구축 사업을 따냈습니다. 회사는 국립국어원 사업에서 만든 데이터의 정확도가 99.9%라고 밝혔습니다.
2026년 1월에는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사업 2차 단계에 오른 업스테이지 컨소시엄에 데이터 총괄 파트너로 들어갔습니다. 데이터를 모으고 다듬는 절차, 품질 관리, 저작권 검증, 모델을 마무리 학습시킬 데이터셋 구축까지 맡는 자리입니다.
이 대표는 업계 비교 대상으로 미국의 스케일AI, 서지AI 같은 데이터 라벨링 기업을 꼽습니다. 그리고 돈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데이터에만 조 단위로 투자하지만, 한국은 가장 많이 써도 100억 원이 안 된다."
10월 7일 'AI월드 2026' 발표에서는 경고의 수위를 더 올렸습니다. "레시피나 화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재료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만든 AI를 중국 데이터로 학습시키면 중국에 편향된 정보를 주는 인공지능이 될 수 있다."
데이터를 파는 회사 대표가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니, 자기 물건의 수요를 말하는 발언입니다. 그래도 이 발언에는 거래의 속이 그대로 보입니다. 모델을 만드는 쪽이 공개 데이터를 다 쓴 뒤 사람이 만든 비영어권 문장을 사야 하는 처지가 됐고, 플리토는 그 문장을 13년째 쌓아 온 쪽에 서 있습니다.
이 계산이 맞아떨어지기까지 매출 없는 4년이 있었습니다
이정수 대표는 2007년 SK텔레콤에 입사해 사내벤처를 거쳤고, 2012년 공동창업자 셋이 독립해 플리토를 세웠습니다.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는 "4년 동안 매출이 아예 없던 시기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월급도 못 받았고, 공동창업자 한 명은 결혼한 지 100일도 안 돼 대기업을 나왔다고 했습니다.
창업 당시 기계 번역은 품질이 형편없었습니다. 이 대표는 그 대신 사람들이 함께 번역하며 쌓이는 언어 데이터가 언젠가 AI에 쓰일 거라고 봤습니다. 2014년 이후 AI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그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고, 2015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평창 동계올림픽용으로 만든 통번역기 '지니톡'에 처음으로 데이터를 팔았습니다.
2019년 7월에는 코스닥 사업모델 특례상장 1호로 상장했습니다. 이익을 낸 실적이 아니라 사업 모델을 평가받아 들어간 첫 사례였습니다. 2021년 11월에는 전환사채 100억원을 발행했고, 2025년 1월 그중 60억원이 주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남은 40억원은 회사가 사들여 갖고 있다가 2025년 5월 30일 전량 소각했습니다. 언제든 주식으로 바뀌어 시장에 나올 수 있던 물량을 없앤 것입니다.
흑자는 2024년 3분기에 처음 났습니다. 2025년 연결 매출은 360억원으로 전년보다 77% 늘었고, 영업이익 62억원으로 창사 첫 연간 흑자를 냈습니다. 윤민용 CFO는 "이번 흑자 전환은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한 수익성 개선의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가 바라는 회사의 모습도 분명합니다. "화려한 모델을 내세우는 회사가 아니라, AI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연료를 공급하는 회사로 기억되고 싶다."
흑자 다음 해 1분기에 적자를 감수하고 키운 것은 통역이었습니다
2026년 1분기 플리토는 6400만원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CFO는 AI 솔루션 개발 비용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솔루션이 실시간 통번역입니다.
회사는 2023년 12월 행사용 동시통역 'Live Translation'과 대화용 'Chat Translation'을 내놨습니다. 2024년에는 행사 통역을 무료로 풀었습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쓰이는 말을 데이터로 모으려는 전략이었습니다.
현장은 이렇게 돌아갑니다. 연사가 말하면 무대 화면에 번역 자막이 뜨고, 참석자는 QR코드를 찍어 자기 휴대폰으로 원하는 언어의 통역을 받습니다. 2024년 UAE 국제 전력 포럼 '월드 유틸리티 콩그레스'에서는 40개 세션에 동시통역을 붙였고, '롱블랙 컨퍼런스 2026'에서는 참가자가 최대 42개 언어로 내용을 봤습니다. 2026년 5월에는 미국 IBM 행사에서도 쓰였습니다.
10월 16일 뉴욕 맨해튼의 '꿈 스테이지'도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콘서트홀 형태의 메인 무대에서는 대형 스크린에 한국어·영어 자막이 떴고, 참가자는 별도 통역 장비 없이 화면으로 강연을 따라갔습니다. 작은 세션 공간에서는 각자 휴대폰으로 보글 앱을 켰습니다.
도입 행사 수는 2024년 150건에서 2025년 442건으로 늘었고, 회사는 2026년 600건 이상을 내다봅니다. 9월 28일부터는 두 서비스를 '보글(Vogl)'로 묶었습니다. 행사용은 '보글 스테이지', 매장과 창구용은 '보글 존'입니다. 보안 때문에 외부 서버를 못 쓰는 기업에는 자체 서버에 설치해 줍니다.
대화용 번역기에서는 데이터가 돌아오는 길이 더 잘 보입니다. 상대가 QR코드를 찍으면 각자 휴대폰에서 번역기가 켜지고 누가 말하는지 자동으로 갈라집니다. 번역이 안 된 표현은 따로 모여 발음 데이터로 넓어지고, 한 단어에 수십에서 100개 넘는 발음 데이터가 쌓입니다.
사용자가 자주 쓰는 용어와 업종을 익혀 '독파모' 같은 약어도 알아듣게 하겠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입니다. 이 대표는 "고유명사를 틀리면 신뢰가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행사장에서 틀린 고유명사는 다음 행사를 놓치게 하고, 고친 고유명사는 다음 데이터가 됩니다.
무료로 풀던 통역은 이제 돈이 됩니다. 2026년 상반기 솔루션 매출은 24억30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175% 늘었고, 2분기만 17억1000만원으로 1분기보다 140% 늘었습니다. 보글 구독자는 3분기 8만 명을 넘어 출시 초기인 지난해 4분기의 약 14배가 됐습니다. AWS·AMD의 행사, 신세계백화점·올리브영 매장까지 들어갔습니다.
매출 구성도 움직였습니다. 2026년 상반기 데이터 판매는 49.5%, 플랫폼은 22.7%, 솔루션은 18.2%였습니다. 2025년 1~3분기 누적 때 데이터 76.0%, 솔루션 7.5%와는 다른 그림입니다. 해외 비중은 상반기 약 62%였습니다.

3분기 최대 실적은 6월 말 쌓아 둔 데이터 계약이 풀리던 분기였습니다
상반기에 데이터 비중이 49.5%까지 내려간 데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8월 CFO는 대형 글로벌 수주가 3분기부터 실적에 반영되고, 글로벌 데이터 납품은 하반기에 매출로 잡힌다고 설명했습니다. 6월 말 수주잔고 287억4200만원 가운데 283억1500만원이 데이터 판매 계약이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3분기가 왔습니다. 매출 177억8600만원은 1년 전보다 50.97%, 2분기 81억600만원보다 119.41% 늘었습니다. 영업이익 89억7200만원은 1년 전보다 217.05% 늘었고, 매출의 50.4%가 영업이익으로 남았습니다. 순이익은 83억4600만원이었습니다.
한 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연간 62억원을 넘었습니다. 1~3분기 누적으로는 매출 311억600만원, 영업이익 103억600만원입니다. 회사가 9월에 제시한 올해 목표가 매출 500억원 이상, 영업이익 100억원 이상이었으니 영업이익 목표는 3분기에 이미 넘어섰습니다.
필자는 이번 분기를 데이터 공장의 분기로 봅니다. 이익률 50%는 개발비를 쏟던 통역 사업 혼자서 만들기 어려운 숫자이고, 3분기 매출보다 큰 283억원어치 데이터 계약이 하반기에 풀린다고 회사가 미리 말해 둔 자리에 정확히 찍혔습니다. 보글 구독자 8만 명과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맺은 39억원 규모 AI 통번역 공급계약이 같은 날 함께 전해졌지만, 장부의 무게 중심은 여전히 데이터 쪽입니다.

매출 목표 500억원까지는 4분기에 약 189억원이 더 필요합니다. 역대 최대였던 3분기보다 큰 분기를 한 번 더 만들어야 닿는 거리입니다. 그 일감의 출처는 6월 말 장부가 이미 말해 줬습니다. 287억원 중 283억원, 번역 앱 이용자들이 고쳐 놓은 문장을 기다리는 AI 회사들의 계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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