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신소재 CNT 증설 1,950억원, 1,320억원은 주식이 아닌 현금으로 돌아갔다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양극판을 만들 때는 얇은 금속 박 위에 검은 반죽을 바른다. 반죽의 몸통은 전기를 담는 활물질 가루다. 그 알갱이들 사이에 아주 적은 양이 함께 섞이는 재료가 있다. 알갱이와 알갱이 사이로 전기가 다닐 길을 내 주는 도전재다. 배터리 원가에서 도전재가 차지하는 몫은 1~1.5%쯤이다.
나노신소재(121600)는 그 1%를 판다. 지름이 나노미터 단위인 탄소 대롱, 탄소나노튜브(CNT)를 액체 속에 뭉치지 않게 풀어 배터리 회사가 반죽에 섞어 쓰는 상태로 넘긴다. 2025년 상반기 이 회사 매출의 58.5%가 CNT를 중심으로 한 2차전지 소재였다.
이 회사는 남의 공장이 돌아야 제 공장이 돈다. 2023년 9월 나노신소재는 이자 0%짜리 사채 1,950억원을 끌어와 배터리 고객을 따라 미국 켄터키와 폴란드에 공장을 세웠다. 공장이 서자 고객의 배터리 라인이 멈칫했고, 새 공장은 비었다. 사채를 산 투자자들은 주식으로 바꾸는 대신 원금을 돌려 달라고 했다. 2026년 9월까지 회사가 현금으로 갚은 돈이 약 1,320억원이다. 올해 3분기 영업이익 66억원은 그 빈 공장에 마침내 물건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숫자다.
11월 6일 나노신소재는 임원 3명에게 특별상여로 자기주식 1,170주, 8,143만원어치를 내주기로 했다. 올해 1월 4,000주, 9월 5,913주에 이어 또 자사주로 상여를 준다. 공시는 작다. 이 공시를 낸 회사가 지난 3년 동안 건너온 길이 크다.
브라운관 유리에 바르던 투명한 가루
1997년 외환위기로 제자들의 취업 길이 막히자 한밭대 응용화학 전공 박장우 교수는 제자 3명과 학교 창업보육센터에 자리를 잡았다. 제자들 일자리를 회사로 만들어 주자는 출발이었다. 1999년 이들이 처음 내놓은 것이 브라운관 투명전극용 산화인듐주석(ITO) 가루다. 그때까지 전량 수입하던 소재였다. ITO는 빛은 통과시키면서 전기는 흐르게 하는 산화물이다. 화면 유리에 얇게 입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선이 된다. 회사는 2000년 3월 법인이 됐다.
기술은 처음부터 두 갈래였다. 금속 산화물을 나노 크기 가루로 만든 다음, 그 가루를 단단하게 굳혀 판으로 만들거나 액체에 고르게 풀어 슬러리와 페이스트로 만든다. 판은 디스플레이와 태양전지 공장으로 간다. 진공 속에서 이 판을 때리면 튀어나온 원자가 유리 위에 얇은 막으로 쌓인다. 회사가 TCO 타깃이라 부르는 투명 전극용 판이 이것이다. 액체 쪽은 반도체 웨이퍼 표면을 갈아 평평하게 만드는 연마액, CMP 슬러리로 나갔다.
2011년 2월 코스닥에 상장할 때 매출은 228억원이었고, LCD·태양전지·터치스크린 원료를 미국 3M 같은 회사에 대고 있었다. 2019년 매출은 489억원이다. 창업자는 2018년까지 회사 주식 11만8,000주를 모교에 기증했다.
이 시절 나노신소재의 손님은 화면과 태양광 패널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그 공장이 라인을 늘리면 판이 팔렸고, 줄이면 판이 남았다. 남의 공장 사정에 제 매출이 매이는 구조는 이때 이미 있었다.
같은 손재주로 배터리 반죽 속에 전기 길을 깔았다
2021년 나노신소재는 CNT 슬러리로 처음 매출을 냈다. 가루를 액체에 고르게 푸는 20년 손재주가 배터리로 건너간 자리다. CNT는 서로 엉겨 붙는 힘이 강해서 고르게 풀지 못하면 전극 안에서 덩어리가 되고 제 역할을 못 한다. 이 회사가 파는 것은 CNT 가루가 아니라 이미 풀어 놓은 CNT다.
CNT는 기존 도전재인 카본블랙보다 비싸다. 다중벽 CNT가 kg당 40~60달러, 카본블랙은 10~20달러다. 대신 5분의 1쯤만 넣어도 된다. 덜 넣은 자리만큼 전기를 담는 활물질을 더 채울 수 있고, 같은 크기 배터리에 전기를 더 담는다. 배터리 회사가 비싼 재료를 사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단일벽 CNT는 한 단계 위다. 충전할 때 크게 부푸는 실리콘 음극재를 붙잡아 주는 뼈대 노릇을 하고, 풀어 내는 비용이 다중벽의 다섯 배쯤 든다. 그만큼 비싸게 팔 수 있는 제품이다.
손님은 배터리 셀 회사다. 국내 배터리 3사가 모두 손님 명단에 있고, 국내 물량은 LG에너지솔루션이 중심이다. 미국 공장은 SK온 쪽 물량을 받는다.
이 재료는 고객의 전극 반죽 레시피 안에 들어간다. 그래서 주문은 고객 라인과 같이 움직인다. 라인이 돌면 나오고, 라인이 서면 멈춘다. 나노신소재의 매출표는 고객 공장의 가동표를 그대로 베낀다.
이자 0% 사채 1,950억원으로 고객이 있는 나라에 공장을 세웠다
2022년은 이 회사의 꼭대기였다. 매출 799억원, 영업이익 168억원. 2023년 여름 증권가는 2025년 이 회사 매출을 4,355억원으로 그렸다. 3년 만에 다섯 배가 넘는 그림이다.
그 그림이 그려지던 2023년 9월 21일, 회사는 사채 세 종류를 한꺼번에 찍었다. 4회 전환사채 620억원, 5회 신주인수권부사채 1,000억원, 6회 전환사채 330억원, 합쳐 1,950억원이다. 세 사채 모두 이자가 0%다. 투자자는 이자를 받는 대신 나중에 정해진 값에 주식으로 바꾸거나 새 주식을 살 권리를 샀다. 처음 정한 그 값이 주당 15만5,997원이었다.
쓸 곳은 공장이었다. 시설에 1,500억원(미국 600억원, 유럽 350억원, 한국·중국 200억원씩, 일본 150억원), 원재료와 인건비에 450억원을 잡았다. 미국 켄터키 공장은 2024년 3월, 폴란드 공장은 같은 해 6월 준공됐다. 켄터키는 연 9,000톤으로 시작해 2만 톤까지, 폴란드는 5,000톤에서 2만 톤까지 늘릴 계획이었다.
이 결정으로 회사의 몸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만든 재료를 실어 보내던 회사가, 고객이 공장을 짓는 나라에 제 공장을 두고 매달 고정비를 치르는 회사가 됐다. 고객의 라인이 돌면 그 고정비는 금방 덮이고, 서면 고스란히 손실로 남는다.
고객 공장이 멈칫하자 사채가 현금으로 돌아왔다
공장이 선 2024년, 전기차 수요가 한풀 꺾인 정체기가 겹쳤다. 2024년 매출은 877억원으로 2022년(799억원)에서 크게 늘지 못했고, 영업이익은 29억9,0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75% 줄었다. 순이익은 18억5,000만원 적자였다. 2025년에는 북미 전기차 보조금 문제로 주요 고객의 미국 공장 가동률이 내려가자 켄터키 공장 가동률도 따라 내려갔다. 2025년 1~3분기 영업이익은 30억원이었다.
2026년 상반기에도 해외 공장은 무거웠다. 미국 법인은 6개월 동안 59억원어치를 팔고 18억원을 잃었다. 폴란드 법인은 3억원어치를 팔고 29억원을 잃었다. 판 것보다 잃은 것이 열 배 가까이 많다.
그사이 사채의 셈법이 뒤집혔다. 주식으로 바꾸는 값은 15만5,997원에서 10만9,198원으로 내려 고쳐졌지만, 2026년 9월 주가는 그 절반 안팎인 4만원대 후반~5만원 언저리였다. 10만원 넘게 내고 주식을 받을 투자자는 없다. 이 사채들에는 2026년 3월 21일부터 3개월마다 원금을 돌려 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 조기상환청구권이 붙어 있었다. 투자자들은 그 권리를 썼다.
2026년 상반기에만 995억원이 나갔다. 4회 전환사채 300억원, 6회 30억원, 5회 신주인수권부사채 665억원이다. 9월 21일에는 325억원(4회 182억원, 5회 143억원)이 더 나갔고, 4회 사채 182억원은 회사 자기 자금으로 사들였다. 1,950억원 가운데 약 1,320억원이 주식이 되지 못하고 현금으로 돌아갔다. 2023년 말 2,682억원이던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9월 상환 전인 2026년 6월 말 1,590억원이었다.
이자 0%는 공짜가 아니었다. 주식으로 바뀌지 않는 전환사채는 그냥 빚이고, 이 빚은 찍은 지 2년 반 만에 갚을 날이 오도록 짜여 있었다. 나노신소재는 고객을 따라 공장을 세운 값을, 그 공장이 돈을 벌기 전에 먼저 치렀다.
3분기 66억원, 빈 공장에 물건이 흐르기 시작했다
숫자가 돌아선 것은 그 상환이 한창이던 때다. 2026년 상반기 매출은 692억원, 영업이익은 81억원이다. 1년 전 같은 기간(517억원, 21억원)보다 이익이 네 배 가까이 많다. 11월 3일 낸 3분기 잠정 실적은 매출 424억원, 영업이익 66억원으로, 1년 전보다 매출은 35.7%, 영업이익은 632.6% 늘었다. 1~3분기를 합치면 매출 1,116억원, 영업이익 147억원이다. 1년 전 같은 기간 영업이익 30억원의 다섯 배에 가깝다.
이익이 돌아온 길은 공장이다. CNT 도전재 출하가 늘면서 해외 공장이 매달 치르던 고정비가 물량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3분기에는 태양전지 쪽 매출이 늘어 이익을 보탰다. 이 숫자는 외부 감사인의 검토 전 잠정치다.
회사의 출발점이었던 쪽은 지금 대부분 쉬고 있다. 화면·태양전지용 TCO 타깃 설비 가동률은 2023년 26%, 2024년 15%, 2025년 21%, 2026년 상반기 14%다. 설비 능력의 86%가 놀았다. 태양전지 소재 매출은 2023년 74억원에서 2026년 상반기 1억원으로 내려앉았다. 3분기의 반등이 이 흐름을 돌릴 만큼인지는 아직 한 분기치 숫자뿐이다.
무게중심은 배터리로 넘어갔다. 그래서 이 회사의 손익을 가장 크게 흔드는 것은 제 공장의 기술보다 고객의 배터리 라인이 얼마나 도느냐다.
12월 21일, 남은 사채 약 630억원
12월 9일: 임원 상여용 자기주식 1,170주 처분 기간이 끝난다.
12월 21일: 2023년 9월에 찍은 사채 1,950억원 가운데 남은 약 630억원을 두고, 투자자가 3개월 만에 다시 원금을 돌려 달라고 할 수 있는 날이다.
남의 공장이 있는 나라까지 따라간 값
나노신소재가 3년 동안 한 선택은 분명하다. 재료를 실어 보내는 회사로 남지 않고 고객이 있는 나라에 제 공장을 세웠고, 그 값을 주식이 아니라 현금으로 먼저 치렀다. 1~3분기 영업이익 147억원은 회사 전체의 이익이 늘었다는 뜻이지만, 해외 공장이 돈을 벌기 시작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한다. 2022년 한 해 168억원을 넘어설지, 남은 630억원도 현금으로 돌아갈지는 아직 답할 숫자가 없다.
1999년 이 회사가 처음 만든 가루는 브라운관 유리 안쪽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 길을 깔았다. 지금 파는 CNT는 배터리 반죽 속에서 같은 일을 한다. 25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것은 남의 물건 안에 길을 깐다는 일이고, 이번에 바뀐 것은 그 길을 깔려고 남의 공장이 있는 나라까지 따라갔다는 것이다. 이제 나노신소재의 다음 분기 숫자는 제 장부보다 고객 공장의 가동표에 먼저 적힌다.
관련 회사 이야기: 사채를 되사들인 돈이 회사의 다음 선택을 바꾼 경우는 성호전자, 27억원에 되산 사채로 658억원을 치렀다에서 다뤘다. 회사가 자기 주식을 사고 내주는 구조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 뜻에 정리돼 있다.
근거 자료: 자기주식 처분 결정 1,170주·8,143만원(2026-11-06), 자기주식 4,000주 처분 결정(2026-01-23), 자기주식 5,913주 처분 결정(2026-09), 1997년 한밭대 창업·배터리 3사 고객(2023-08-11), 2000년 법인 설립·2011년 코스닥 상장·매출 228억원·3M 공급(2011-02-09), 1999년 ITO 가루 국산화·주식 기증(2020-12-16), 2021년 CNT 슬러리 첫 매출·2022년 실적·2025년 매출 추정 4,355억원(2023-07-25), 2025년 상반기 매출 구성·CNT와 카본블랙 단가·사용량·고객·2024년 실적(2025-10-22), CNT 도전재와 활물질 비중(2026-04-15), 미국·폴란드 공장 생산능력(2024-11-08), 1,950억원 사채 구성·용도·조기상환·해외 법인 실적(2026-09), TCO 타깃 가동률·태양전지 매출·상반기 상환액·현금성 자산(2026-09-17), 4회 전환사채 182억원 만기 전 취득(2026-09-21), 3분기 잠정 실적(2026-11-03), 3분기 실적 개선 요인(2026-11-05).
이 글은 공개 자료에 근거한 사업 해석이며 투자 권유가 아니다. 수치는 본문에 적은 각 시점 기준이다. 2026년 3분기 실적은 외부 감사인 검토 전 잠정치다. 2차전지 소재 비중, CNT·카본블랙 단가와 사용량, 고객 구성은 보도에 인용된 증권가 분석을 따랐다. 1,320억원과 남은 630억원은 9월 21일 상환까지 반영한 보도 집계이며, 12월 21일은 3월 21일부터 3개월 간격이라는 청구 조건으로 계산한 날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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