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금융지주·SBI 펀드 논의, 10조원을 낸 기업이 일본 데이터센터에 장비도 공급한다

한국투자금융지주와 일본 SBI금융그룹이 한국 기업 자금을 모아 일본에 200㎿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공동 펀드를 논의 중이다. 1차 목표는 1조1500억엔(약 10조원)이고, 출자 기업이 장비를 공급하는 구조가 핵심이다. 연말까지 자금 조달 밑그림이 나오며, 성패는 두 나라가 실익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달렸다.

뉴스 핵심
- 한국투자금융지주와 SBI는 1조1500억엔(약 10조원) 목표의 공동 펀드로 일본 200㎿ 규모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논의 중이다.
- 출자 기업이 장비를 공급하는 구조여서 삼성SDI(ESS), LG전자(냉각설비)가 유력 공급사로 거론된다.
- 관건은 자금 규모가 아니라 양국이 실익을 어떻게 나누느냐다.
한국투자금융지주와 SBI는 일본에 무엇을 지으려 하나
두 금융사가 짜는 것은 건물 한 채가 아니라 돈을 모으는 통이다. 한국투자금융지주(Korea Investment Holdings)와 일본 SBI금융그룹(SBI Group)이 공동 펀드를 만들어 일본 AI 데이터센터에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1차 투자 목표는 1조1500억엔, 한국 돈으로 약 10조원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규모를 더 늘릴 예정이다. 구축할 데이터센터는 전력 용량 기준 200㎿ 규모다.
아직 확정된 계약은 아니다. 두 회사는 연말까지 자금 조달과 투자 계획의 밑그림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지금 단계는 설계도를 그리기 전, 누구에게 돈을 받을지 타진하는 때다.

왜 데이터센터 판을 은행이 아니라 증권·금융사가 짜나
AI 경쟁에 필요한 자금과 설비가 너무 커서 개별 기업이나 한 나라가 다 감당하기 어렵다. 이 구상의 출발점이 이것이다. 투자자를 모으고 관련 기업이 장비와 기술을 대면, 대형 사업의 위험을 쪼갤 수 있다.
그래서 투자은행(IB) 영역에서 자리를 잡은 두 금융사가 나섰다. 한국투자금융지주 산하 한국투자증권은 올 3분기 누적 기준 주식발행(ECM) 리그테이블 1위다. 국내 기업·기관투자가와 쌓은 네트워크가 강점이다.
SBI는 일본 최대 온라인 증권사를 거느리고 은행·보험·자산운용까지 하는 종합금융그룹이다. 한쪽은 한국 자금줄, 다른 쪽은 일본 판매망과 금융 인프라를 쥔 셈이다. 두 회사는 AI 인프라 관련 새 투자·운용 사업을 찾는 것이 목표다.

펀드에 돈을 넣으면 납품도 한다는 구조에서 삼성SDI·LG전자는 무엇을 얻나
두 금융사는 SK그룹, 삼성그룹, LG그룹 등에 참여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하는 기업은 펀드 출자와 연계해 자사 제품과 장비를 데이터센터에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출자금이 일본 현장에서 발주로 돌아오는 길을 노린다.
데이터센터에는 반도체만 들어가지 않는다. 서버가 내뿜는 열을 식히는 냉각 설비와 전력을 안정적으로 대는 장비가 필요하다.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삼성SDI, 냉각설비는 LG전자 등이 유력한 공급사로 거론된다.
이 기업들의 주주에게 이 펀드는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출자에 따른 투자 수익, 다른 하나는 일본 AI 인프라 시장에 제품을 넣을 기회다. 참여 기업이 주목하는 것도 이 두 가지다.

데이터센터에 정치인이 붙은 이유는 땅과 전력이다
이 사업에는 일본 정치권 인사가 깊숙이 관여한다. 데이터센터는 토지와 전력 공급 같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 건설 과정에서 중요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공동펀드를 만들기 전에 규슈전력과 사업 후보지의 전력 공급을 논의한 것도 같은 이유다.
시간표를 보면 논의가 어떻게 달아올랐는지 보인다. 8월 방한한 기하라 세이지 자민당 의원(전 관방 부장관)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을 만났다. 9월 말에는 김 회장과 기타오 요시타카 SBI홀딩스 회장이 만나 논의를 이어갔다.
이 회동이 구체적 협력 논의를 급물살로 바꾼 계기로 알려졌다. 금융사 간 합의보다 정치 채널이 먼저 길을 낸 모양새다.

LNG 교환에서 AI 인프라까지, 한·일 협력은 어떻게 넓어졌나
앞선 길은 에너지였다. 대규모 LNG 수입국인 두 나라는 공동 구매와 물량 교환으로 협력을 키웠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일본 최대 민간 화력발전 기업 제라와 LNG 물량을 교환했고, 공동구매·트레이딩·에너지 위기 시 수급 대응 협력도 이어가기로 했다.
데이터센터는 이 방식을 첨단산업으로 옮긴 판이다. 에너지에서는 구매력과 비축·수급 역량을 합쳤고, 데이터센터에서는 자금과 장비, 전력·부지를 합친다. 구체화되면 양국 정·재계의 논의가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총리는 지난달 29일 도쿄대 국제한반도포럼 세미나에서 "한·일 협력도 경제를 중심으로 장기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 협력을 정치 관계의 닻으로 삼자는 주문이다.
미국 스타게이트를 따라 하면 10조엔까지 커진다
이 구상의 모델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미국 데이터센터 투자로 알려졌다. 4년간 미국 AI 인프라에 5000억달러(약 668조원)를 투자하는 스타게이트가 대표 사례다.
한·일 펀드는 규모는 훨씬 작게 출발하지만 야심은 길다. 1차 사업이 순항하면 향후 30년에 걸쳐 투자 규모를 10조엔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10조원짜리 첫 삽이 30년짜리 장기 프로젝트의 입구라는 얘기다.
장기 확대가 가능하려면 1차 사업의 성적표가 중요하다. 순항 여부가 곧 다음 자금 모집의 조건이 된다.
10조원보다 어려운 숫자는 두 나라가 얼마나 양보하느냐다
재계 관계자는 "한·일 양국은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 주력 산업에서 경쟁하는 분야가 많아 협력 논의를 진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자금 조달 규모뿐 아니라 양측이 얼마나 양보하고 실익을 나눌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발언이 이 펀드의 급소를 정확히 짚는다고 본다. 데이터센터는 출자자가 곧 납품 업체가 되는 구조라서, 돈보다 발주 몫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먼저 부딪힌다. 삼성SDI, LG전자, 그리고 일본 측 공급사가 한 현장에서 만나는 순간 협력과 경쟁이 겹친다.
결국 이 펀드는 AI 인프라가 금융 상품이 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첫 시험대다. 연말에 나올 밑그림에서 출자자별 몫과 공급 범위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그려지는지가 사업의 무게를 가른다. 돈이 모이는 속도보다 몫을 나누는 방식이 이 판의 성격을 정한다.
이 글은 논의 단계의 펀드 구상을 정리한 정보 제공용 글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펀드 규모와 참여 기업, 공급사는 확정 전이라 바뀌거나 무산될 수 있고, 엔화 환산 금액은 환율에 따라 달라집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독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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