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교역은 파파이스에 513억원을 넣었다가 꽁치·오징어 원양 회사를 823억원에 샀다
새벽 서울 가락시장 채소 경매장에는 부추와 미나리만 따로 파는 경매장이 있다. 두 채소 모두 이 시장에서 거래 1위를 하는 도매법인 동화청과가 차린 자리다. 동화청과의 주인은 농업 회사가 아니다. 중서부태평양에서 참치를 잡는 신라교역(004970)이다. 같은 회사가 2022년 12월에는 서울 강남역 근처에 파파이스 1호점을 열었다.
신라교역은 1967년 섬유를 내다 파는 무역회사로 출발해 1972년 바다로 나갔다. 반세기 넘게 고기를 잡아 번 돈으로 이 회사는 뭍에서 두 번 길을 냈다. 한 번은 이미 돌아가던 경매장을 샀고, 한 번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햄버거 가게를 세웠다.
결과는 갈렸다. 2019년 771억원에 산 경매장은 3년 만에 거래 금액을 30% 늘렸다. 513억원을 부어 세운 파파이스는 4년 만에 매물이 됐다. 신라교역은 새 사업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이미 굴러가는 자리를 사는 회사다. 그 방식이 통한 곳과 안 통한 곳을 나란히 놓으면 이번 거래가 어느 쪽인지 보인다.
10월 13일 신라교역은 부산의 원양어업 회사 선민수산 주식 3만주 전부를 넘겨받았다. 값은 823억원이다. 이 회사가 잡는 고기는 참치가 아니라 꽁치와 오징어다.
참치 배 15척과 참치캔 장사
신라교역의 바다 사업은 배 15척에서 시작한다. 커다란 그물로 참치 떼를 통째로 둘러싸 잡는 선망선이 6척, 긴 줄에 낚시를 여럿 달아 한 마리씩 낚는 연승선이 9척이다. 선망선의 솜씨는 업계에서 알아준다. 2015~2017년 이 회사 선망선 한 척이 1년에 잡은 참치는 평균 1만1,986톤으로, 배를 더 많이 가진 동원산업의 척당 8,745톤보다 많았다.
그런데 지금 신라교역의 매출에서 가장 큰 덩어리는 직접 잡은 고기가 아니다. 해외 합작법인이 잡은 참치와 참치캔을 국내외에 파는 수산물 유통이다. 올해 2분기 매출로 보면 수산물 유통이 48%, 원양어업이 40%, 가락시장 경매장이 들어 있는 농산물 유통이 7%다. 참치 회사의 절반은 이미 파는 회사다.
바다 장사는 해마다 결과가 다르다. 참치값도, 어장의 사정도 회사가 정하지 못한다. 2024년 매출 4,961억원에 영업이익 164억원을 낸 회사가 2025년에는 매출 4,547억원에 영업손실 16억원을 냈다. 배도 늙는다. 올해 3월 내놓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는 낡은 어선을 원양어선 안전펀드로 바꿔 나가겠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흔들리는 해에도 쌓인 것은 있다. 올해 6월 말 별도 기준 자본 6,258억원 가운데 6,070억원이 그동안 번 돈을 나눠 주지 않고 쌓아 둔 이익잉여금이다. 2018년 이 회사의 차입금은 74억원뿐이었다. 바다에서 번 현금이 뭍으로 나가는 길의 연료였다.
가락시장 경매장은 사서 들어갔다
첫 번째 길은 2019년에 났다. 신라교역은 그해 서울랜드가 갖고 있던 동화청과 지분 99.86%를 771억원에 샀다. 동화청과는 1977년에 세워진 가락시장 청과 도매법인이다. 전국 농민이 올려 보낸 과일과 채소를 경매에 붙이고, 낙찰 가격의 4~7%를 수수료로 받는다. 수입은 사실상 이 수수료 하나다.
이 자리는 좀처럼 새로 생기지 않는다. 가락시장의 민간 청과 도매법인은 다섯 곳이고, 시장이 문을 연 뒤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이 판에 들어가는 문은 사실상 하나, 이미 있는 법인을 사는 것이다. 신라교역은 그 문으로 들어갔다.
산 다음에는 거래를 키웠다. 인수 당시 6,783억원이던 한 해 경매 금액이 2022년 8,820억원이 됐다. 부추와 미나리는 전용 경매장을 따로 열어 점유율 1위를 했고, 깻잎·쪽파·당근도 가락시장에서 가장 많이 거래한다. 2023년 매출은 392억원으로 가락시장 도매법인 가운데 가장 많았다. 다섯 법인의 2019~2023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23.87%였다.
돈의 성격으로 보면 이 인수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참치 회사는 고기값이 떨어지면 같이 떨어진다. 경매장은 배추값이 오르든 내리든 거래만 돌면 수수료가 남는다. 참치값에 매인 회사가 산 것은 가격이 아니라 거래에 붙는 몫이었다.
이 자리의 값은 제도가 만든다. 그래서 제도가 흔들리면 같이 흔들린다. 도매법인이 바뀌지 않는 구조를 두고 독과점 비판이 이어졌고, 2025년 6월에는 도매법인을 공모로 뽑고 재지정 기간을 5년 이하로 묶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왔다. 신라교역이 산 것은 영원한 자리가 아니라 지금의 규칙 아래 있는 자리다.
파파이스는 맨땅에서 세웠다
두 번째 길은 반대 방향이었다. 파파이스는 1994년 한국에 들어와 한때 매장이 200곳 가까이 됐지만, 운영하던 회사가 2020년 사업을 접으면서 한국에서 사라졌다. 신라교역은 2021년 파파이스 본사 레스토랑브랜즈인터내셔널(RBI)과 한국 사업 전체를 맡는 계약을 맺고, 외식만 하는 100% 자회사 넌럭셔리어스컴퍼니를 세웠다. 가맹점을 받지 않고 모든 매장을 직접 운영하기로 했다.
2022년 12월 문을 연 강남역 1호점에는 사흘 동안 5,000명이 찾아왔다. 매장은 22곳까지 늘었다. 그 사이 신라교역은 새 주식을 사 주는 방식으로 자회사에 돈을 넣었다. 2021년 119억원, 2022년 12월 95억원, 2023년 7월 65억원으로 시작한 증자는 그 뒤로도 이어져 4년 동안 513억원이 쌓였다.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2025년 1~9월 넌럭셔리어스컴퍼니는 매출 97억원에 순손실 52억원을 냈다. 100원어치를 팔 때마다 54원을 잃은 장사다. 치킨버거 시장의 경쟁은 거셌고, 그해 12월 파파이스 한국 사업은 500억원 안팎의 매물로 나왔다. 매각은 본사 RBI가 이끌었고, 신라교역은 직영 매장을 정리하고 빠질 계획을 세웠다.
경매장과 버거 가게의 차이는 손님에 있다. 경매장은 물건을 들고 오는 농민과 사 가는 상인이 이미 매일 새벽 와 있는 자리를 샀다. 버거 가게는 손님을 한 명씩 새로 불러 모아야 했다. 바다에서 반세기를 보낸 회사가 서툴렀던 쪽은 뒤의 일이었다.
꽁치·오징어 회사에 823억원, 700억원은 빌렸다
세 번째 길은 다시 바다로 났다. 선민수산은 2000년 부산 남포동에 자리 잡은 원양어업 회사로, 주로 꽁치와 오징어를 잡는다. 직원은 22명이다. 신라교역은 민일기 대표 등 11명이 가진 주식 3만주를 전부 사기로 9월 4일 계약했고, 9월 30일 중도금을 거쳐 10월 13일 잔금을 치렀다. 값 823억원은 외부 회계법인이 매긴 가치 786억~891억원 범위 안에서 정했다. 회사가 밝힌 목적은 사업 다각화다.
이번에도 신라교역은 만들지 않고 샀다. 원양어선 한 척을 새로 띄우려면 배를 짓고 선원을 모으고 어장을 익혀야 한다. 선민수산을 사면 26년 동안 그 일을 해 온 회사가 통째로 들어온다. 참치를 잡던 회사의 바다가 꽁치와 오징어로 넓어진다. 파파이스보다는 동화청과에 가까운 거래다.
달라진 것은 값을 치르는 방식이다. 823억원 가운데 700억원을 하나은행 400억원, 국민은행 300억원으로 빌려 왔다. 올해 6월 말 별도 기준 901억원이던 부채가 이 거래만으로 1,601억원이 된다. 2018년 74억원이던 차입금은 파파이스와 고덕동 새 사옥에 돈이 들어간 2023년 말 977억원까지 불어난 적이 있다. 빚이 거의 없던 회사가 바다 밖에서 길을 찾는 사이 빌리는 데 익숙한 회사가 됐다.
그래도 덩치에 비하면 무리한 빚은 아니다. 거래가 끝난 뒤의 부채도 자본 6,258억원의 4분의 1 수준이고, 823억원은 자본의 13%다. 이번 거래가 묻는 것은 감당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 돈이 경매장처럼 거래를 키우는 쪽에 쓰이느냐, 버거 가게처럼 손실을 메우는 쪽에 쓰이느냐다.
반세기 동안 바다에서 번 돈으로 뭍의 자리를 샀던 회사가, 이번에는 빌린 돈으로 다시 바다의 자리를 샀다.
관련 회사 이야기: 참치와 명태를 다루는 또 다른 수산 회사는 한성기업은 크래미로 유명하지만 매출 30%는 참치·명태다에서, 빌린 돈으로 제 덩치만 한 사업을 산 회사는 이렘은 50년 된 강관 회사인데 제 매출만 한 롯데타워 바닥판 사업을 사 왔다에서 다뤘다.
근거 자료: DART 공시 목록(신라교역 합병등종료보고서(자산양수도), 2026-10-13), 선민수산 주식 3만주 823억원 양수 완료·일정·양수 전후 재무(2026-10-13 공시), 자산양수도 전후 재무 요약(2026-10-13), 정정 주요사항보고서 차입 출처·외부평가 범위(2026-10-13), 선민수산 사업자 정보(주요 품목·종업원), 선민수산 업종·대표자, 신라교역 기업 개요·선단·사업 부문(2026-08 기준), 2025년 실적·2026년 2분기 매출 구성, 기업가치 제고 계획·2024년 실적(2026-03-20 공시), 설립·원양 진출 연혁과 척당 어획량(2018-03-07), 파파이스 자회사 증자·차입금 추이(2024-04-01), 파파이스 1호점 개점 사흘 방문객(2022-12-19), 파파이스 한국 사업 매물·투입액·손실(2025-12-09),동화청과 지분 99.86% 771억원 인수(2019-05), 동화청과 경매 금액·품목별 거래 1위(2023-12-22), 가락시장 도매법인 수수료율·영업이익률·법 개정안(2025-11-13), 2023년 도매법인 매출 순위(2024-04), 신라교역 연혁.
이 글은 공개 자료에 근거한 사업 해석이며 투자 권유가 아니다. 수치는 본문에 적은 각 시점 기준이다. 2024~2025년 실적은 연결 기준, 자본·부채·이익잉여금은 2026년 6월 말 별도 기준이며 거래 후 부채는 공시가 거래 금액만 더한 값이다. 2026년 2분기 매출 구성은 금융정보 집계 기준이다. 동화청과 지분은 인수 공시 기준 99.86%이며 이후 보도에는 100%로도 나온다. 파파이스 한국 사업의 매각 진행 상황은 2025년 12월 보도 기준이다. 선민수산의 품목·직원 수는 사업자 정보 기준이다.




